[옷로비 수사] 검찰수사 제대로 했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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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나라 전체를 혼란 속에 몰아넣고 국민적 공분 (公憤) 을 자아냈던 장관.재벌 부인들간의 옷 로비 파문은 검찰이 2일 강인덕 (康仁德) 전 통일부장관 부인 배정숙 (裵貞淑) 씨를 사법처리키로 하는 선에서 외형상 수사가 일단락됐다.

검찰의 조사 결과대로라면 이 사건은 전형적인 법조 브로커 사건이다.

외화 밀반출로 궁지에 몰린 신동아그룹 최순영 (崔淳永) 회장 부인 이형자 (李馨子) 씨가 남편을 살리려고 백방 노력하다 康전장관 부인 裵씨에게 당했다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당시 검찰총장이던 김태정 (金泰政) 법무장관 부인 연정희 (延貞姬) 씨가 로비대상이 됐는데 延씨가 이에 넘어가지 않았다는 게 큰 줄거리다.

장관과 재벌 부인들이 여럿 등장하고 고급의상실이 중간에 끼어드는 등 관심을 촉발할 요인들이 겹쳐 소문은 무성했지만 기본구도는 간단하다는 게 검찰측 논리다.

그러나 야당인 한나라당은 당장에 '확전 (擴戰)' 을 다짐했고 시민단체 등 여론 역시 "믿을 수 없다" 는 쪽이 우세하다.

따라서 여진 (餘震) 이 쉽게 가라앉을 것 같지 않다.

최악의 경우도 상정할 수 있다.

검찰 수사 발표와는 전혀 다른 증거나 증언이 나오는 경우다.

崔회장 부인 李씨가 "오해가 풀렸다" 는 당초 태도를 번복, 또다른 로비내용을 주장하면 엄청난 사태가 올 수 있다.

벌써부터 '최순영 리스트' 와는 별개로 '이형자 리스트' 라는 말도 나돈다.

검찰 수사에서 裵씨의 혐의내용 일부를 확인해준 라스포사 사장 정일순 (鄭日順.55) 씨가 말을 바꿔도 결과가 비슷할 것이다.

만일 검찰 수사의 기본틀이 뒤집어 질 경우 단순히 검찰뿐 아니라 정권 전체에 회복 불능의 타격이 올 것이 예상돼 '살얼음판 걷기' 는 당분간 계속될 전망이다.

옷 로비 파동은 또 검찰에 대한 불신의 정도를 확인시켜준 측면이 있다.

수사 결과를 발표하던 2일 서울지검에는 "은폐.축소수사가 아니냐" 는 전화가 무수히 걸려왔다.

검찰은 이미 올해초 터진 대전 법조비리와 심재륜 (沈在淪) 고검장 항명파동.평검사들 항명파동으로 만신창이가 됐다.

거기에 옷 로비 사건 처리에 대한 불신과 의혹이 덧붙여진 셈이다.

이는 검찰이 金법무장관 부인 延씨를 과잉보호해 자초한 측면이 있다.

조직 안팎에 몰아닥친 위기를 金장관과 신임 박순용 (朴舜用) 총장이 어떻게 대처할지도 관심이다.

이번 사건을 통해 청와대 사정반 (사직동팀) 의 역할과 존립근거에 대한 의문도 제기됐다.

정권 차원에선 이 특수조직을 버리기도, 껴안기도 난감하겠지만 여론은 "버리라" 는 쪽이다.

더욱 크게는 "고위 공직자들과 그 부인들에 대해 조성된 국민적 반감을 어떻게 치유하느냐" 가 문제일 것이다.

옷 로비 파동이 진행되면서 일종의 계급갈등적 분위기도 드러났기 때문이다.

"국민들은 IMF로 허리띠를 조르는데 너희는 고급옷 사입고 호화음식 먹으면서 지내느냐" 는 반감이다.

이런 감정은 근거도 있고 이해도 되지만 부추길 만한 사항은 분명 아니다.

김종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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