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정상급 피아니스트 10명 릴레이 무대 펼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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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0면

불꺼진 무대 위에 피아노 두대가 맞붙어있고 10명의 정장 차림 신사들이 나란히 서있다. 곧 한명씩 번갈아 앉아 같은 곡을 이어서 연주한다.

하지만 연주자가 바뀔 때마다 관객을 사로잡는 이미지는 영롱한 이슬에서 거센 파도로, 또 푸른 초원에서 노을빛 하늘로 바뀌어 나간다.

6월 7일 오후 7시30분 호암아트홀에서 열리는 '1백개의 황금손가락' 이란 공연의 하이라이트인 '릴레이 연주' 장면이다.

재즈팬이라면 가슴 두근거리며 고대해왔을 이 공연은 10명의 최정상급 재즈 피아노 연주자들이 한 무대에서 펼치는 음악의 향연. '1백개의 황금손가락' 은 이들 10명의 손가락을 의미한다.

10명이 한꺼번에 무대에 선다고 해서 10대의 피아노에 나란히 앉는 것은 아니다. 공연장 사정상 두대의 피아노를 이용한 솔로.듀오.트리오.쿼텟 연주와 릴레이 연주가 진행된다.

특히 솔로와 듀오 연주에서는 뮤지션들의 개인기를, 트리오와 쿼텟에서는 '인터플레이' (자유롭게 서로 주고받는 연주) 의 묘미를 만끽할 수 있다.

이번 공연의 특징은 다음 세기를 이끌어갈 재즈계 신세대 피아니스트들이 대거 등장한다는 점. '빌 에반스의 후계자' 로 불리며 최근 가장 주목받는 연주자 브래드 멜도우 (29) 를 비롯, 사이러스 체스너트 (37).에릭 리드 (28) 등이 그들이다.

이들은 격조높은 연주로 유명한 존 루이스 (79).듀크 조단 (77) 같은 거장급, 케니 바론 (56).제시카 윌리엄스 (51) 같은 중견급 연주자와 호흡을 맞춰 이번 세기 마지막 공연을 빛낼 예정이다.

이중 가장 연장자인 존 루이스는 바흐의 '평균율' 을 재즈화해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신화적' 존재. 섹소폰 주자 찰리 파커.소니 롤린스 등과도 녹음했고 마일스 데이비스 악단에도 참여하면서 재즈사를 장식한 '모던 재즈 쿼텟' 을 만든 인물이다.

91년 초연을 가진 '…황금손가락' 은 일본의 문화기획자 다카오 이시즈카씨가 기획한 것. 세계 재즈의 거장이 한 자리에 모이는 공연을 구상해온 그가 15년간 노력한 끝에 성사시켰다.

일본서만 격년으로 열리던 이 공연은 95년부터 한국서도 개최되고 있다. 현재 일본 12개 도시를 순회하고 있는 이들에 대해 현지 언론은 "뉴욕의 재즈 피아니스트들이 모두 사라졌다" 고 말할 정도로 흥분한다.

이 공연은 뮤지션의 연주 리듬을 깨지 않고 공연장을 찾은 관객을 존중하기 위해 녹음이나 녹화를 금하기로 유명하다.

일본서 나온 93년 공연실황만이 유일한 음반이며 공연장에서 현장판매 예정. 한국 공연에서는 스탠더드 넘버를 비롯, 탄생 1백주년을 맞은 듀크 엘링턴의 '인 어 센티멘털 무드' '테이크 더 A트레인' 등을 연주한다.

특히 '아리랑' '진도 아리랑' 등을 재즈로 편곡, 들려줄 예정. 02 - 738 - 7029.

문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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