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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깊이읽기] ‘폭군 CEO’가 리먼 브러더스 몰락 불렀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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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상식의 실패
로렌스 G. 맥도날드 패트릭 로빈슨 지음, 이현주 옮김
컬처앤스토리, 512쪽 1만9800원

뉴욕 시간으로 2008년 9월 15일 새벽 2시. 158년 전통의 투자은행 리먼 브러더스가 파산을 신청했다. 글로벌 금융위기를 촉발시킨 사건이었다.

하지만 금융위기가 마른 하늘에 벼락 치듯 터져나온 게 아니듯, 리먼의 파산도 돌연사가 아니었다. 몇 년에 걸쳐 불길한 징조가 나타났고, 내부 경고음도 울렸다. 그런데도 정예 프로 집단인 리먼은 왜 생존의 길을 찾지 못했을까.

이 책은 내부자의 시점에서 쓴 ‘리먼 몰락사’다. 주저자인 로렌스 맥도날드는 2004~2008년 리먼의 채권 담당 부사장이었다. 안에 있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긴박했던 상황을 생생하게 전해준다.

사실 리먼의 몰락엔 거시경제 요인이 크다. 2001년 이후 미국의 저금리 정책이 너무 오래 간 게 탈이었다. 경기를 띄우려 금리를 낮추고, 넘치는 돈으로 마구 대출해 주고, 버는 것보다 많이 빌려 쓰고, 그래도 집값·주식값은 계속 올라 호주머니가 두툼해지고…. 이렇게 흥청망청하다가 뻥 터진 게 미국의 버블이고, 방만한 경영 탓에 남보다 먼저 당한 게 리먼이다.

저자는 파산의 결정적 원인을 최고경영자(CEO)인 리처드 펄드 전 회장의 폭주로 단언한다. 펄드는 왕처럼 군림하고 지배하려고만 했지, 내부의 경고에 전혀 신경을 쓰지 않았다고 한다. 그는 위험한 거래를 무모하게 밀어붙였는데, 이는 금융의 기본 중의 기본인 리스크 관리에 어긋나는 것이다. ‘상식의 실패’는 곧 리스크 관리의 실패를 뜻한다. 우리 은행들에게도 훌륭한 반면교사다.

침몰 직전 리먼의 사내 분위기는 흉흉했다. 2008년 6월엔 간부들이 사내 쿠데타를 일으켰다고 한다. 간부들은 회장실로 쳐들어가 심복을 내보내라고 요구했고, 결국 성사시켰다. 그러나 때가 너무 늦었다.

펄드는 또 헨리 폴슨 재무장관을 도발해 막판에 화를 자초했다. 한국산업은행의 인수제의를 진지하게 검토하라는 폴슨의 제안을 받아친 것이다.

“내게 회사를 어떻게 경영하라고 말하지 마시오. 나는 내 속도에 맞게 공을 던지는 사람이요.”

저자는 미국 정부가 AIG는 구제해주면서도 리먼을 버린 데는 두 사람 사이의 냉랭한 기류도 영향을 줬다고 본다.

리먼의 최후의 발악은 애처로울 정도다. 파산 신청 직전, 펄드는 조지 워커 이사에게 백악관의 선처를 구해보라고 부탁한다. 워커는 조지 부시 대통령의 사촌이다. 하지만 워커의 전화에 돌아온 응답은 절망적이었다. “대통령께서는 지금 전화를 받을 수 없다고 하십니다.”

마지막으로 저자가 전해주는 월가의 격언 하나.

“봉이 없는지 포커판을 둘러보라. 만약 눈에 띄지 않는다면 바로 당신이 봉일 확률이 높다.”

우리는 아시아의 금융허브를 지향한다지만, 먼저 국제금융의 봉이 되는 것부터 피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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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윤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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