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 천용택 체제] 탈정치에 승부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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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천용택 (千容宅) 신임 원장의 부임으로 국가정보원에 상당한 변화가 예고되고 있다.

千원장은 우선 출신면에서 이종찬 (李鍾贊) 전 원장과 대조적이다.

李전원장은 4선의원 경력에 한때 민자당 대권후보 선출에 도전했던 중량감있는 정치인. 그러나 千원장은 전국구 초선에다 정치권에서도 중심부와는 거리가 좀 있었던 편이다.

그는 25일 국정원을 맡으면서 탈당과 함께 전국구 의원직도 사퇴했다.

사실상 정계를 은퇴하는 셈이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정치수요가 급증하는 시점에서 국정원의 수장을 바꾼 것은 김대중 대통령의 집권 2년차 국정운용 전략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李전원장이 이끌어온 국민의 정부 1기 국정원 체제가 국정원의 개혁을 마무리지은 만큼 이제는 국민 속에서 거듭나는 실무형 2기 국정원을 착근시키겠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국정원 관계자는 "과거 중앙정보부.안기부 시절의 정권 안위차원과는 다른 국가 안위라는 순수 기능을 살리기 위해 정치색이 옅은 인물이 기용된 것으로 본다" 고 했다.

이에 따라 국정원은 국내정보보다 해외정보 수집.분석 쪽으로 무게중심을 옮겨갈 전망이다.

다른 관계자는 "사회 전반에 퍼진 부패는 검찰.경찰의 수사력만으로는 단속에 한계가 있다" 며 "국정원의 정화기능이 제대로 발휘돼야 척결이 가능한데 千원장의 존재가 큰 힘이 될 것" 이라고 말했다.

비정치분야에서 국정원의 권한과 기능이 실질적으로 더 강화될 가능성도 있다는 것이다.

청와대가 국정원의 탈 (脫) 정치 기조를 완전히 구축하기 위한 후속인사를 단행할지에 대해서는 전망이 엇갈린다.

만일 인사가 이뤄진다면 16대 총선 출마가 예상되는 문희상 (文喜相) 기조실장은 우선적으로 교체대상이 된다.

나종일 (羅鍾一) 1차장.신건 (辛建) 2차장 등의 거취도 주목 대상이지만 업무의 연속성을 위해 유임될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千원장의 조직 장악력이 강화될지 여부에 대해서는 양론이 있다.

전임자와 달리 정치복귀를 염두에 둘 필요가 없어 과감하게 일을 추진할 수 있다는 점은 조직 장악도를 높일 수 있는 장점이다.

반면 千원장이 복잡한 국정원을 잘 알지 못해 조직 장악에 한계를 보일 수도 있다.

다만 千원장이 군출신으로 비상기획위원장과 국방장관을 거친 경력이 국정원 관리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이하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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