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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 중국 60년 <10> 중국이 펼치는 세계전략 ‘체스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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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사귈 교> 중국은 외교 강국이다. 왕조 시절부터 자신을 중심으로 설정한 뒤 주변과의 관계를 조율해 온 경험이 녹아 있는 나라다. 현재의 중국도 자신의 오랜 전통적 경험을 바탕으로 세계의 초강국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그 발판은 가장 역동적인 지역으로 부상하는 동아시아다.

“세계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위상은?” 이런 질문을 던지면 중국의 학계와 관계는 다른 반응을 보인다. 전자는 미국과 비견되는 초강대국으로서의 자신감, 후자는 “아직은 갈 길이 멀다”는 신중함이다. 다가올 미래에 중국이 차지할 위상에 관한 논란은 ‘현재 진행형’인 것이다. 그러나 중국 당국과 학계가 일치하는 점이 있다. 바로 ‘중화민족의 부흥’이다. 중국 지도자들의 발언을 보면 그들이 지향하는 바를 읽을 수 있다. 최근엔 공동 발전, 공동 안보 등의 ‘윈-윈(共嬴,双嬴)’의 의미를 지닌 단어가 자주 눈에 띈다. 1990년대 말에 자주 나타나던 ‘패권주의’ ‘다극화’ 등의 용어는 자취를 감추고 있다.

◆세계적 강대국 지향, 그러나 개념은 상생(相生)=미 국무부 중국담당 부차관보를 지낸 수전 셔크 교수가 중국 관영 신문인 인민일보(人民日報)를 분석한 내용에서도 이런 변화가 보인다. ‘패권주의’ 등의 용어는 빈도수에서 2000년에 정점을 이룬 후 크게 감소하고 있다. 반면 윈-윈이 1999년부터 급속히 증가하기 시작해 2005년엔 앞의 두 용어보다 무려 네 배 이상의 빈도수를 보이고 있다.

중국 대외관계의 축선은 강대국외교, 주변국외교, 개도국외교, 그리고 유엔 중심의 다자외교를 포함하는 ‘4개 외교전선(四條線)’이다. 이를 통해 170여 수교국과의 관계를 관리해 가고 있다. 강대국외교에서는 신흥대국의 자신만만한 얼굴로, 주변국외교에서는 우호적인 이웃의 모습으로, 개도국외교에서는 개도국의 대변자이자 리더로서, 그리고 유엔에서는 책임지는 대국이라는 다양한 정체성을 실험하고 있다. 말하자면 일종의 카멜레온식 외교다.

정치국 상무위원 9인이 움직이는 정상 밀착외교가 우선 큰 줄기다. 이들은 역할 분담을 하면서 해외순방에 나선다. 이들이 정기적으로 참가하는 다자정상회담만도 아세안+3,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회의, G20 등 10여 개가 넘는다. 여기에 초청외교까지 포함하면 한 해 동안 170여 수교국과의 면 대 면 밀착 외교를 소화해 낸다.

동반자외교도 탈냉전시대에 중국이 새롭게 모색하는 외교 방식의 하나다. 다양한 국가와 협력관계의 틀을 맺어 미국 중심 체제의 근간이 되고 있는 중첩적 군사동맹(hub and spike)의 대체재임을 암시하고 있다. 국가별로 상이한 수식어가 붙은 20여 개 유형의 맞춤형 전략적 동반자관계를 구축해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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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는 중국 강대국 외교의 발판=2001년 11월 주룽지 총리는 브루나이에서 열린 아세안과의 정상회담에서 자유무역협정 체결을 제안했다. 이 제안은 중국의 동아시아에로의 귀환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그동안 국가의 생존 확보라는 가장 기본적인 과제에 직면했던 중국의 외교적 관심은 강력한 힘을 지닌 서구국가들과의 관계에 모아졌고 지역 국가와의 관계는 종속적인 고려사항에 불과했다. 중국이 한국이나 북한과의 관계를 미국과의 관계라는 보다 큰 틀 속에서 접근하는 것은 이러한 경험의 유산인 셈이다.

그러나 중국의 부상과 함께 이런 행태에 변화가 초래되기 시작했다. 국력의 증대와 함께 진정한 세계 강대국은 자신이 소재한 지역에서 주도권을 확립함으로써 이뤄진다는 인식이 부상했다. 이후 중국은 동아시아를 하나의 지역으로 보기 시작했고, 이 지역에서의 영향력 확장을 위해 ‘동아시아의 일체화’ 과정에 주의를 기울이고 있다.

중국은 2002년 16차 당대회에서의 정치보고를 통해 선린우호와 지역협력 정책을 중국이 전통적으로 강조해온 양자관계와 함께 대외정책의 중요한 요소로 부각시켰다. ‘동아시아에 근거를 마련해 세계로 나아간다(立足東亞 走向世界)’는 동아시아 전략이 등장한 것이다. 중국의 강력한 부상을 꺼리는 일부 아세안국가를 의식해 중국은 미국·일본과 협력하는 지역 내 ‘3강 체제 구축’ 등 다양한 전략을 구상 중에 있다.

이동률 동덕여대 교수·김재철 가톨릭대 교수 leedr@dongduk.ac.kr, 사진=김상선 기자, 그래픽=김주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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