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신 중국 60년 <9> 대동사회를 위한 디자인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4면

<꾀 략>  중국은 거대한 국가다. 그 내부를 통합으로 이끌면서 스스로를 세계적 강국으로 자리매김하기 위해서는 그에 걸맞은 대형 전략이 필요하다. 고대 왕조로부터 지금의 중국까지 이런 대전략은 중국을 지탱해 왔던 힘이다. 현대 중국의 강력한 부상 이면에도 대전략의 개념이 살아 숨쉰다.


1978년 미국 시사지 『타임』은 그 해의 인물로 덩샤오핑을 선정했다. 48쪽에 이르는 장문의 특집기사에서 잡지는 덩을 ‘중국의 몽상가’로 지칭했다. 그러나 덩은 이후 이런 꿈을 정말로 실현하는 ‘개혁개방의 총설계사’라는 이름을 얻었다. 건국 60년을 맞는 오늘의 중국은 그가 조국의 미래를 위해 펼쳤던 담대한 리더십의 결정판이다. 그 바탕엔 현실의 복잡다기한 국면을 모두 아우르는 ‘대전략(大戰略)’이 깔려 있다. 중국은 제국을 경험한 국가다. 서기 1000년 무렵 중국의 국내총생산은 세계 총생산의 22.7%에 달한 이후 줄곧 20%대 이상을 유지했다. <그래픽 참조> 현대 중국의 리더십은 이 같은 ‘대국의 꿈’을 지향하고 있다.

◆중국의 대전략 변천사=건국 초기 마오쩌둥은 옛 소련에 의존하는 ‘일변도 정책’을 추구했다. 이후 중국은 사회주의와 미국이 각각 하나의 지대이고 나머지는 모두 중간지대라는 ‘중간지대론’을 구축했고, 1960년대 말에는 고립에서 벗어나기 위해 ‘죽의 장막’을 걷어내기 시작했다. 76년 혁명1세대들이 잇따라 사망하면서 혁명의 시대는 종언을 고하고 덩샤오핑이 오뚜기처럼 부활했다. 그는 독립자주, 비동맹, 전방위외교를 강조했다. 그러나 소련과 동유럽의 해체, 여기에 89년 천안문 사태란 악재가 닥치면서 중국에 대한 서방의 견제가 강화됐고 중국은 낮은 포복으로 난국을 헤쳐나가고자 했다. 실력을 갖추기 전에는 앞에 나서지 않는다는 덩샤오핑의 ‘도광양회(韜光養晦)’ 전략은 여기에서 비롯했다. 중국은 국력이 크게 상승하면서 비로소 고립주의에 가까웠던 외교행태를 바꾸기 시작했다. 21세기 들어선 국제 문제에 대해 점차 ‘필요하면 할 말은 한다(有所作爲)’는 태도를 취하고 있다. 특히 미국발 금융위기 이후 중국의 전략적 공간이 확대되면서 그 행보는 빨라지고 있다.

<그래픽을 누르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개혁개방은 대외 전략의 중요 전환점=덩샤오핑은 중국의 문호를 열어 젖힌 뒤 이른바 3단계 발전론이라는 원대한 구상을 발표했다. 80년에 비해 90년에는 두 배로, 2000년에는 4배로 지속적으로 경제규모를 늘려 먹고 사는 데 여유를 갖춘 ‘샤오캉(小康)사회’를 건설하고자 했다. 그러나 중국은 지난해 1인당 국내총생산이 3266달러로 2020년까지 3000달러를 달성하겠다는 목표를 조기에 완수했다. 이런 추세라면 2050년께 이상적인 형태라고 하는 대동(大同)사회 실현도 가능할 것이다.

이에 따라 중국의 대전략은 새로운 전기를 맞고 있다. 서점가마다 이론적이며 실천적인 연구가 쏟아져 나온다. 대학이나 정부출연 연구소마다 본격적인 전략연구가 시작됐고, 국가의 연구프로젝트도 이곳으로 몰리고 있다. 이 분야를 집중적으로 연구하는 중앙당교(中央黨校) 국제전략연구소의 먼훙화(40) 부소장은 국제전략학의 학문적 규범을 만들고 있는 중이다. 그는 “전략이 역사를 총괄하고 현실을 파악하며 미래를 선택하는 것이다 ”고 주장한다.

◆변치 않는 견고한 현실주의=2008년 12월 18일 오전 인민대회당에서 후진타오는 힘찬 목소리로 개혁개방 30주년을 기념하는 연설을 했다. 그는 중국의 현대화를 역설하면서 “우리는 흔들리지 말고, ‘저텅’하지 말고(不折騰), 해이해지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청중석에서 작은 웃음이 터졌다. 국가 중대사를 논의하는 자리에서 최고지도자가 돌연 ‘부저텅’이라는 북방지역 사투리를 사용했기 때문이다. 이 말엔 ‘우물쭈물하지 않고 꿋꿋하게 간다’는 의미와 ‘쓸데없이 논쟁하지 말고 가자’는 의미가 동시에 포함돼 있다. 후진타오의 발언은 ‘쓸데없는 논쟁에 빠지지 말고 냉정 또 냉정해지자’는 의미다. 중국의 전략가들은 20년 후와 50년 후의 중국의 위상을 설정하고 ‘지금 중국이 어디에 있으며 또 어디로 나아가고 있는가’를 끊임없이 물으면서 전략적 지도를 그리고 있다. 그 바탕은 마오쩌둥과 덩샤오핑, 그리고 현재의 지도부에까지 줄곧 이어지는 실사구시(實事求是)의 태도다. 이는 중국식 대전략의 뿌리다.

이희옥 성균관대 정외과 교수 leeok@skku.edu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