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칸영화제 주목받는 작품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43면

'첫술에 배부르랴' 는 속담이 있다. 모든 일에는 시행착오가 따르기 마련이란 얘기다.

그러나 올 칸영화제에는 국제무대 '신인' 이 크게 주목을 받고 있다. '택시' 등을 만든 카를로스 사우라 이후 스페인의 '국민감독' 으로 대접받는 페드로 알모도바르 (48)가 그 주인공.

칸영화제 질 자콥 집행위원장으로부터 "부디 출품 좀 해달라" 는 삼고초려 끝에 올 처음 칸에 선을 보이게 된 알모도바르는 '엄마의 모든 것 (Todo Sobre Mi Madre)' 으로 현재 작품.감독상 후보 1순위로 꼽힌다. 그의 작품이 관심을 끄는 이유, 그건 인간에 대한 따뜻한 시선 때문이다.

'엄마의 모든 것' 은 아들을 잃은 아픔을 딛고 보편적 사랑을 실천하는 어머니의 이야기다.

이 작품의 주인공 마누엘라는 "눈물로 눈을 씻은 여자만이 (사물을) 명확히 볼 수 있다" 는 그리스 속담을 떠올리게 하는 여성이다.

'신선한 육체' '비밀의 꽃' 등에서 보여준 스페인 특유의 원색적인 컬러와 인간관계에 대한 감독의 깊이 있는 탐구가 빛난다.

알모도바르와 함께 수상 후보로 강력히 지목되는 감독은 캐나다 출신의 아톰 에고얀. 올해 39살의 에고얀은 '엑조티카' 로 국내에도 어느 정도 알려진 인물. 17살 소녀 펠리시아가 아일랜드해를 건너 아버지를 찾아나서는 스릴러 '펠리시아의 여행' 을 출품, 평단의 우호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

특히 심사위원장을 맡은 데이비드 크로넨버그와는 같은 캐나다 출신인데다, 크로넨버그가 96년 '크래시' 로 심사위원 특별상을 받을 때 에고얀이 심사위원이었단 사실을 감안하면 결코 무시 못할 작품이라는 분석.

이밖에 칸영화제 본선 경쟁부문 3년 연속 진출한 영국출신 감독 마이클 윈터버톰의 '원더랜드' 와 짐 자무시의 스릴러 '고스트 독 : 사무라이의 길' ,

그리고 데이비드 린치의 '스트레이트 스토리' 등이 수상에 근접해 있는 작품으로 입에 오르내리고 있다. 특히 '블루 벨벳' 과 '트윈 픽스' 등으로 스릴러의 독특한 경지를 개척한 린치는 이번엔 코미디로 영화문법을 바꿔 화제가 되고 있다.

전통적으로 후반 개봉작의 강세를 입증이라도 하듯, 올해도 초반 개봉작은 범작 수준에 머물렀다.

첫 작품이었던, 프랑스의 '영상천재' 라는 레오 카락스의 '폴라X' 는 제목 그대로 'X' (LA타임스 케네스 터런의 평가) 였다.

근친상간과 하드코어적인 섹스 등 충격영상을 삽입했으나 우연성 남발과 엉성한 편집으로 고국 팬들을 크게 실망시켰다.

동아시아의 자존심을 세울 것으로 예상됐던 첸 카이거의 '황제와 자객' 과 기타노 다케시의 '기쿠지로의 여름' 도 기대만큼 선전하지 못하고 있다.

한편 '주목할 시선' 부문에서는 린 램지라는 영국 스코틀랜드출신 여성감독의 '쥐잡이' 가 돋보였다.

성장의 아픔을 앓는 한 소년의 시선으로 바라본 스코틀랜드의 어두운 사회상을 마치 찰스 디킨스의 소설처럼 리얼하게 엮어냈다.

이밖에 단편 경쟁부문에 나간 한국영화 3편은 "역동성을 보여주는 새로운 발견" 이라는 평을 얻고 있어 수상이 기대되고 있다.

칸 (프랑스) =정재왈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