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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마비평] 칸영화제 두 얼굴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43면

지난 2월 베를린영화제 집행위원장 모리츠 드 하들렌이 칸영화제에 대해 신랄한 비판을 가했다. 내용인즉 칸영화제가 독일영화를 너무 푸대접한다는 것.

하지만 하들렌의 이러한 비판은 베를린영화제가 점차 칸에 밀리고 있다는 위기의식의 발로였다는 게 중론이다. 흔히 3대 국제영화제라 일컬어지는 칸.베를린.베니스 중 이제는 칸이 '지존' 의 자리를 차지하고 베를린과 베니스가 뒤를 쫓는 형국이 되어 버린 것이다.

이번 칸영화제도 그 욱일승천하는 칸의 기세를 유감없이 발휘했다. 올해 뤼미에르극장의 붉은 카펫을 밟게 된 감독 22명의 면면은 그야말로 이 시대 최고의 감독들이라 하기에 조금도 손색이 없다.

칸은 이러한 최고의 감독과 작품들로 인해 권위를 높여가고 있지만 바로 그 감독들에게 권위를 부여하는데에도 인색하지 않다.

집행위원장 질 자콥은 개막식과 축하파티, 그 어느 곳에서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지만, 매일 밤 뤼미에르극장의 7시 상영 때 모든 입장객에게 정장을 요구함으로써 감독들에게 최고의 예우를 아끼지 않고 있다.

프랑스어 만이 공식언어이며, 9개의 문을 지나는 동안 10번의 제지를 받는다는 푸념이 있을 만큼 관료적이다.

관객뿐 아니라 영화제 참가자 모두에게 인내를 강요하는 이러한 칸의 오만함은 올해도 전혀 변함이 없었고, 또 앞으로도 변함이 없을 것이다.

하지만 어쩌면 바로 그 권위 때문에 칸은 쇠락까지는 아니더라도 위상의 변화를 부를 지도 모른다. 그 근거는 마킷에서 찾을 수 있다.

칸의 권위의 또 다른 요인 가운데 하나인 칸마킷은 전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마킷이며, 거래 또한 가장 활발하다 (예를 들어 칸의 마킷부스 비용은 베를린의 그것에 비해 2배가 넘는다). 하지만 칸에서 독립영화 시장은 점차 위축되고 있으며, 마킷의 기능 또한 서서히 변하고 있다.

영화제 기간에 베니스영화제 집행위원장 로베르토 바베라는 매우 의미심장한 발언을 했다.

필름마킷이 더 이상 영화를 사고파는 제한적 기능에 머물 수만은 없으며, 아이디어를 사고팔고 제작을 위한 투자를 이끌어내는 기능이 확대돼야 한다는 것.

이러한 권위와 변화의 흐름 속에 놓인 칸을 바라보면 부산국제영화제, 나아가 우리의 영화제의 나아갈 방향은 더욱 분명해진다. 칸은 결코 부산의 모델이 아니다.

칸의 '권위' 대신 부산은 영화인과 관객이 스스럼없이 만나는 '친밀함' 을 강조할 것이며 (칸에는 영화상영이 끝난 후 관객과의 대화시간조차 없다) , 베니스가 의욕적으로 추진하는 마킷기능의 확장은 이미 지난해부터 PPP (부산프로모션플랜) 를 통해 그 일부를 시도한 바 있다.

부산국제영화제의 정체성과 미래는 이러한 전략을 통해 확보해 나가야 할 것이다.

김지석 <부산국제영화제 프로그래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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