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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416. 아라리난장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43면

제9장 갯벌

한씨네 식구들이 전라도 내륙 깊숙이 들어가 유심히 살펴본 장터는 월출산 산록 아래에 자리잡은 영암장과 나주의 들머리면서 영산강 하구에 자리잡은 영산포장이었다.

2일과 7일에 서는 여느 읍내장과는 달리 영암과 영산포의 장날은 같은 날짜인 1일과 5일에 섰다. 게다가 이들 두 장날은 같은 날에 서면서도 자동차로 불과 20분 거리를 두고 있었다.

놀란 것은 영암장의 규모였다. 예부터 참빗 생산지로 유명한 이곳 읍내의 좁은 도로에서 빠끔하게 들여다보기에 동무리의 영암장은 골목장에 불과하다는 인상을 받기 십상이다.

그러나 구경이나 해볼까 하고 골목 안으로 헤적헤적 들어서기라도 한다면 시내 도로에 구태여 '5일 장터' 란 표지판을 세워둔 심상찮은 까닭을 깨닫게 된다.

시내 안쪽에 그토록 큰 규모의 장이 서고 있으리란 예측은 쉽지 않다. 영산포장 역시 마찬가지였다. 다만 영산포는 영암장과는 달리 영산교 부근 일대 도로에 노출되어 있다.

그러나 장시의 활기를 비교하면 영암장과 다툴 만했다. 영암은 깊숙한 내륙이고, 영산포는 나주가 코앞이기도 하였는데, 이들 두 장날이 그토록 번성한 까닭을 헤아리기란 쉽지 않았다. 영산포는 나주에 속해 있는 고장인데도 장시의 풍속은 오히려 영암과 닮아 있기도 했다.

두 장터의 난전을 살펴보면, 어물전이 장시의 활기를 주도하고 있다는 것은 손쉽게 발견할 수 있었다. 어물전에는 홍어.숭어.상어.병어.조기같이 다른 장에서 흔하게 볼 수 없는 어물들이 좌판에 쌓였고, 어패류 역시 종류의 다양함과 신선도에서 다른 읍내장들이 따르지 못했다.

군산의 옥서면에 있는 하제포구의 조업은 스크루로 조개를 잡기 때문에 우리나라에서 조개가 가장 많이 잡히는 곳으로 소문나 있지만, 고흥 여자만에서 출하돼 이들 두 장시에서 팔리고 있는 어패류 역시 다양함에는 하제포구에 버금갈 만했다.

백합. 소라. 피조개. 개조개. 흰조개. 바지락. 개량조개까지 좌판에는 조개치고 없는 것이 없었다. 5일장에는 노점상이든 장꾼이든간에 8할이 여성들이게 마련인데, 영암장과 영산포장의 어물난전 상인들은 대부분이 목소리가 걸찍하고 허우대가 껑충한 남정네들이었다.

그들이 취급하고 있는 어물은 대개 홍어와 숭어, 그리고 상어였다. 그러나 영암의 어물좌판이든 영산포의 어물좌판이든 눈을 씻고 찾아봐도 보이지 않는 어물이 있었다.

그것이 바로 한씨네가 팔고 있는 간고등어였다. 물론 간고등어가 없는 까닭은 전통적으로 신선한 어물을 선호해온 고장 사람들의 입맛을 거스르지 않으려는 것이겠지만,에스키모들에게 냉장고를 팔았다는 말이 흰소리 아닌 현실로 증명된 이상, 간고등어로 배짱껏 매상을 노려볼 만하였다.

이가 빠지면 잇몸이 대신 하더라고, 참빗의 고장이었지만 요즘 들어선 어란 (魚卵) 과 무화과.단감.영암배.수박.짱뚱어.토하젓.세발낙지의 산지로 유명한 영암장터 변두리 어디선가 태호 아닌 한철규의 코타령 소리가 들려 오고 있었다.

주정뱅이 딸기코/바퀴벌레 집게코/이리저리 다니다가/아무코나 깨물코/만년둘째 허무코/알쏭달쏭 내각제/선문답에 분주코/주가올라 신명코/장사잘돼 히쭉코/건설경기 호전코/오대재벌 막막코/빗진장사 그물코/요리조리 빠져도/못당하니 한심코/쉬리영화 대박코/두서너편 더찍어/세계만방 흥행코/강원동강 유유코/산천어가 살지만/댐만들어 잘룩코/섬진강변 벌꿀장/팡팡다방 짜짜루/백합조개 보신코/여성상위 희한코/잔뜩 안고 뒹굴어/푸른하늘 노랗코/따불따불 따따불/통과통과 날렵코/주는대로 먹을코/냉장고에 돈봉투/김치그릇 무안코/아랫목에 돈많아/군대가지 않을코/디스크는 꾀병코/윗목사람 시름코/슬픈야유 모를코/백수건달 빈둥코/삼디업종 결석코/되는대로 살다가/가난세습 불러서/패가망신 부를코/천세났다 고등어/신토불이 별미라/동해바다 간재비/제자리간 고등어/짜지않아 뱃자반/편두통에 효험코/뒤집어도 뱃자반/업어봐도 뱃자반/안드시면 후회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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