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J, 박전대통령과 '화해선언'…'큰정치' 발판될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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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김대중 (金大中) 대통령이 14일 대구광역시 업무보고를 주재하면서 박정희 (朴正熙) 전 대통령과의 '역사적 화해' 를 다시 언급했다.

金대통령은 "나는 어제 돌아가신 朴전대통령과 진심으로 화해했다" 고 운을 뗀 뒤 "사실 지난 대선 때 구미 생가 (生家.朴전대통령) 를 방문했을 때 반은 화해를 하고 반은 표를 의식한 것이었는데 이번에는 진심으로 화해한 것" 이라고 다짐했다. 비록 짤막했지만 심경 고백을 곁들인 이 발언은 전날 경북도 행사 때의 언급보다 더욱 인간적이었다는 게 참석자들의 반응이다.

그러면서 金대통령은 "朴전대통령 기념관 지원은 그 분을 지지했던 사람이 하는 것보다 지지하지 않고 대결했던 사람이 하는 것이 더욱 의의가 있다" 며 "내가 朴전대통령과 화해했듯 나와 여러분이 어제 화해한 것" 이라고 말했다.

金대통령의 이런 대담한 시도에 대해 정치권은 환영하고 있다.

그러나 내심으로 들어가면 미묘한 기류가 깔려 있다.

국민회의는 정동영 (鄭東泳) 대변인 성명을 통해 "민주화 세력과 근대화 세력의 화합은 역사발전의 동력이 될 것" 이라고 평가했다.

국민회의측에서는 金대통령의 이런 움직임이 국민대화합을 위한 '큰 정치' 의 틀을 마련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판단한다.

특히 DJP 공동정권의 기반이 튼튼해질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물론 국민회의측은 "金대통령의 입장은 단순한 정치적 이해에서 출발한 것이 아니다" 며 동기의 순수성을 강조하는 것을 빠뜨리지 않고 있다.

그러나 당에서는 '전국적 국민정당' 을 위한 '동진 (東進)' 정책에 탄력을 줄 것으로 은근히 기대하고 있다.

이미 국민회의측에선 "전두환 (全斗煥) 전 대통령 등 5공 세력보다 朴전대통령 쪽에 비중을 두는 것이 보수층과 TK민심 관리에 효과적" 이라는 진단을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또 이와 관련한 보고서도 청와대 쪽에 전달된 것으로 전해졌다.

한나라당측 반응은 다양하고 복잡하다.

TK 쪽 대표격인 김윤환 (金潤煥) 의원은 "지역화합을 위해 좋은 일" 이라고 받아들였다.

그러나 당의 여러 곳에서는 "과거와 화해를 시도하면서 야당에 정치보복하는 것은 이율배반적" "복선이 깔려있는 총선 전략" 이라고 의심했다.

익명을 부탁한 고위 당직자는 "朴전대통령 기념관 건립이라는 명분을 金대통령이 선점해 버려 여권의 속셈을 꼬집고 대응하기 까다롭다" 고 말했다.

그런 탓인지 안택수 (安澤秀) 대변인은 이례적으로 공식성명을 내지 않았다.

대신 '환영과 경계' 를 함께 언급한 이회창 (李會昌) 총재 주재의 당직자회의 내용을 소개했다.

김종필 (金鍾泌) 총리 쪽 반응도 복잡하다.

한 측근은 "金대통령의 朴전대통령과의 화해, 근대화에 대한 재평가는 바람직하지만 국민회의의 TK 끌어안기라는 측면도 무시할 수 없다" 고 언급했다.

金총리는 14일 金대통령의 대구 발언 내용을 소상하게 보고받았으나 구체적 반응은 보이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하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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