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제개혁신문고] 공무원 무지에 우는 주택임대업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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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대학 강사인 안갑렬 (安甲烈.36.광주시) 씨는 요즘 누님에게 당최 얼굴을 들 수 없다.

교직에서 은퇴한 누님 (54) 이 노후대책으로 주택임대 사업을 하겠다고 해 행정절차를 대신 처리했던 安씨. 담당 공무원이 법 규정이 바뀐 것을 모르는 바람에 생돈 7백여만원을 날려버린 것이다.

安씨가 서울 은평구청을 찾은 것은 지난 3월 26일. 누님이 응암동에 60㎡ (18평) 이하의 미분양 다세대주택 6호 (戶) 를 사들이기로 결심한 직후였다.

언론 보도를 통해 그 규모의 다세대주택 5호 이상을 사 임대하면 등록세.취득세 등 지방세를 감면해 준다는 것을 남매는 알고 있었다.

구청 세무과에서 이 사실을 다시 확인하고 담당부서인 주택과를 찾았다.

주택과 직원은 친절했다.

'임대사업자 등록 및 조건 신고 사항' '민간 임대사업자에 관한 사항' 이란 안내서를 건네면서 등기부 등본 등 꼭 필요한 서류에 밑줄까지 그어주었다.

보름 뒤인 지난달 9일 남매는 다세대주택을 사들여 등기이전을 하고 등록세도 냈다.

이틀 뒤엔 광주시 북구청에 관련 서류를 제출해 주택임대사업자 등록을 마쳤다.

일이 순조로웠다.

그리고 24일 은평구청 세무2과를 찾은 安씨는 납부한 등록세 (4백50여만원) 를 환급하고 부과된 취득세 (2백50여만원) 를 감면해달라고 요청했다.

창구 직원은 "알았다. 처리해 보내주겠다" 고 선선히 답했다.

그러나 바로 서류를 넘겨받은 계장은 자료를 한참 뒤적이더니 깜짝 놀랄 소리를 했다.

"임대사업자 등록 전에 주택을 취득했다면 감면혜택을 받을 수 없다" 는 것이었다.

이들과 옥신각신하던 安씨는 한달 전 주택과 직원이 준 안내서 '민간 임대사업자에 관한 사항' 에 문제가 있음을 알게 됐다.

여기에는 '5호 이상의 주택을 임대 목적으로 매입하여 소유권 이전등기를 마친 사람이 임대하고자 하는 주택의 등기부 등본 또는 건축허가서를 내면 임대사업자가 된다' 고 적혀 있다.

또 주택을 산 지 2개월 안에 사업자 등록을 하면 이미 낸 세금도 환급해 주게 돼 있다.

다시 말해 "주택을 산 뒤 임대사업자 등록을 제때 하면 세금감면이 된다" 는 얘기다.

그러나 安씨가 받은 이 안내서는 근거법령이 바뀌기 전에 만들어진 것이었다.

2년 전인 97년 4월 개정된 임대주택법과 그 시행령에는 '임대주택법에 따라 임대사업자로 등록한 사람이 5호 이상 주택을 임대 목적으로 매입할 경우' 에만 세금을 감면해준다고 돼 있다.

옛 규정과는 '주택 매입과 임대사업자 등록' 의 순서가 거꾸로다.

정리해 보자. 주택과 담당자는 바뀐 내용을 몰랐다.

비치된 자료도 2년이 넘은 것이었다.

세무과 창구 직원 역시 몰랐다.

이 일에 관련된 공무원 중 어렴풋이나마 법 개정을 알고 있는 사람은 세무계장뿐이다.

그래서 安씨 남매는 7백만원을 날렸다.

은평구청 주택과 관계자의 답변은 전형적이다.

"기존 자료들을 복사해 민원인들에게 참고용으로 줬을 뿐이며, 세금감면은 우리 업무가 아니다. " '개혁' 대상 현장의 한 모습이다.

기획취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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