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자본, 전망있는 부실기업·채권 눈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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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부실 기업.채권을 잡아라. " 외환위기 이후 국내 알짜배기 기업 인수.합병 (M&A)에 열을 올린 외국자본이 최근 법정관리기업 투자나 은행 부실채권 매입에 각축전을 벌이고 있다.

국내기업의 돈사정 등이 좋아지면서 M&A는 물론 지분 참여도 어려워지자 고위험.고수익률의 부실기업.채권에 눈을 돌린 것이다. 외국자본들의 한국투자가 이제는 새 라운드에 접어든 셈이다.

홍콩계 펀드인 클레리언 캐피털의 윤웅진 (尹雄鎭) 부장은 14일 제일은행 여신관리부를 방문해 법정관리.화의중인 기업의 영업상황 등에 대해 꼬치꼬치 물었다.

尹부장은 "회생전망이 밝은 업체를 직접 방문해 본 뒤 투자판단을 해 나갈 계획" 이라고 말했다.

클레리언 캐피털은 부실기업 투자 목적으로 이미 들여온 1억달러로 업체당 3천만달러 정도씩 투자해 제2대주주 정도의 위치를 갖고 4~5년간 기업의 가치를 키운 뒤 주식을 되판다는 구상. 尹부장은 "매킨지 등 경영컨설팅업체 출신 인력을 활용해 투자업체의 전략적 의사결정 등도 적극 도울 계획" 이라고 밝혔다.

올 하반기에 미국에서 2억~3억달러를 모을 계획인 이 펀드는 연 수익률 30% 정도를 목표로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펀드 외에 미국계 뉴브리지.리전트 퍼시픽 펀드 등도 국내 부실기업 투자에 관심을 갖고 있는 것으로 국내 금융기관들은 보고 있다.

또 미국계 투자은행인 모건 스탠리.골드먼 삭스 등은 국내은행이 갖고 있는 부실채권의 직접 인수를 추진하고 있다.

외환은행 여신관리부 관계자는 "최근 모건 스탠리와 론 스타 관계자들이 찾아와 외환은행의 부실채권을 직접 매입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모건 스탠리 등이 아직 투자한도나 선호하는 담보물 등에 대해 구체적으로 밝히지는 않은 상태" 라고 한 뒤 "현재 부실자산 감축 대안으로 긍정 검토하고 있다" 고 말했다.

지난달 국민은행에 자본참여를 한 골드먼 삭스도 최근 국민은행에 부실채권 인수 업무를 우선적으로 벌일 공동사업으로 제안했다고 국민은행 관계자는 전했다.

모건 스탠리 등은 부동산 담보를 싼 값에 사들여 ^자산담보부 채권을 발행하거나 (원리금은 부동산을 처분해 상환) ^해외투자자에게 다시 매각하거나^기업이 회생할 경우 채권을 전액 회수하려는 것으로 금융계는 보고 있다.

금융연구원 고성수 (高晟洙) 연구위원은 "국내 은행에 부실자산 가격산정의 토대가 없는 가운데 거래를 하는 것이 우려되나, 이는 금융.기업구조조정이나 부실자산 거래 노하우를 배우는 기회가 될 것" 이라고 평가했다.

이영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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