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비서실- 국민회의 왜 삐걱대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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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청와대 비서실과 국민회의간에 삐걱대는 소리가 자주 나오고 있다.

지난주에는 국민회의 - 자민련이 합의한 정치개혁안을 청와대가 틀어 하루만에 백지화한 일이 있었다.

지난 11일 국민회의 김영배 (金令培) 총재권한대행은 공개석상에서 "비서의 비 (비) 자는 '감출 비' 가 아니냐" 며 직접 김정길 (金正吉) 청와대 정무수석에게 전화를 걸어 "당신이 뭔데 당의 일에 이러쿵 저러쿵 하느냐" 고 따졌다고 한다.

그전에 손세일 (孫世一) 원내총무는 국회문제에 청와대 정무수석이 개입해선 안된다고 말했다가 취소한 일도 있었다.

이처럼 최근 들어 청와대 비서실과 집권당간에는 이런저런 이유로 잡음이 일고 불편한 모습이 나오고 있다.

급기야 그제는 김중권 (金重權) 청와대 비서실장이 이례적으로 국민회의 당사를 찾아 '당정간 충분한 조정과 협의' 를 하라는 김대중 (金大中) 대통령의 뜻을 전했다고 한다.

이런 몇가지 사례를 보면 집권 1년이 넘었는데도 아직껏 정부.여당간에 국정협의 시스템과 역할분담이 제대로 이뤄지지 못하고 있지 않나 하는 의구심을 갖지 않을 수 없다.

당정간에 역할분담이 잘돼있고 협의시스템이 잘 가동된다면 당의 안을 하루만에 번복하거나 당측의 불만이 그렇게 노골적으로 나올 수는 없는 일이다.

우리가 보기에 이런 현상은 집권당이 그 이름에 걸맞은 위상과 역할을 확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중요문제에 있어 당이 소외돼 있기 때문에 당이 헛다리를 짚는 일이 잦고 그런 실수와 과오가 누적되다 보니 집권세력 내에서 당의 위상이 왜소화돼 온 것이다.

국민회의가 총재인 金대통령의 의중 (意中) 을 정확히 알고 있다면 그 의중과 다른 정책이나 방침을 결정할 리도 없을 것이고 청와대 측근들과 마찰이 일어날 까닭도 없을 것이다.

집권당의 이런 불안정한 상태는 곧 여야관계의 불안정으로 연결되고, 이는 정국불안요인으로 작용한다는 점에서 결코 바람직한 일이 못된다.

청와대의 주의를 받고 비서실과 불화 (不和) 상태인 여당을 상대로 야당인들 어떻게 중요한 정치협상을 하겠는가.

집권당의 위상약화는 곧 정치권 전체의 위상약화를 가져온다.

우리는 金정부의 집권 2차년을 맞아 전에도 국정운영시스템을 정립해야 한다는 점을 누차 지적해 왔다.

같은 집권측 내부에서 이처럼 삐걱대는 소리가 계속 나와서는 효율적 국정추진이나 정국안정을 기하기 어렵다.

그런 점에서 정부.여당은 당.정.비서실간의 역할분담과 협의.조정을 제도화하는 시스템을 짜야 한다고 본다.

집권당에 일정한 권한과 책임을 주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야 당이 나서야 할 정치문제나 국회문제에 대해 수석비서관이 나서는 일도 없어질 것이다.

정례적으로 대통령이 중요문제를 당정 간부들과 협의하는 회의체를 운영하는 것도 한 방법일 수 있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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