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의 세계] 10. 축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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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이른바 '축기' 라는 말처럼 기 수련 입문자들을 혼란에 빠뜨리는 것도 흔치 않을 성 싶다.

'축기' 라면 의례 기의 '축적 (蓄積)' 을 뜻하는 것으로 풀이하는 데서 오는 현상일 듯하다.

마치 돈을 저축하듯 '기' 를 쌓으면 단전자리가 달걀만 하게 뭉쳐지거나 아랫배가 무쇠처럼 단단해진다고 가르치는 스승이나 사범도 적지 않다.

실제로 우리 나라의 고명한 B도인은 '축기' 가 잘 돼 아랫배가 돌처럼 강해졌다고 큰소리치다가 병원 신세를 진 일이 있다.

C도인은 중국인 기공사 앞에서 단전이 주먹만한 크기로 형성됐다고 자랑하다가 웃음거리가 되기도 했다.

사실 기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명확하게 안다면 그런 말이 얼마나 허무맹랑한 건지 구태여 설명할 나위도 없을 것이다.

기란 막힘없이 유통되는 성질을 지닌다.

한데 그것이 한 곳에서 뭉치거나 굳어졌다면 잘못됐어도 한참 잘못됐다는 것을 말해 주는 것이다.

기의 세계란 생명에너지의 세계인 동시에 의식의 세계이기도 하다.

의식의 세계에선 생각하기에 따라서 느낌이나 현상이 변화하는 법이다. 기 수련을 할 때 기가 뭉친다는 생각을 반복해서 의식하면 마침내 그런 결과가 일어 난다.

이것은 올바른 단전자리를 찾아 수련함으로써 생기는 '기감 (氣感)' 이나 기의 '팽창감 (膨脹感)' 과는 전혀 다른 것이다.

우리말사전에 보면 '축기' 라는 말의 뜻풀이를 "호흡할 때에 최대한도로 내쉴 수 있는 공기의 양" 이라고 못박고 있다.

그 어디에도 기를 축적한다는 풀이는 없다.

이것은 결국 '축기' 란 호흡의 길이 또는 호흡의 양과 관련된 말임을 웅변해 주는 셈이다.

비록 우리말사전엔 없지만 선도 관련 고전에 보면 '축기 (築基)' 라는 단어가 나온다.

여기서 '축기' 란 '기초 (基礎)' 를 '쌓는다 (築成)' 는 뜻이다.

'낙육당어록 (樂育堂語錄)' 이란 책을 보면 '축기' 란 기 수련의 기초를 닦는 공부로 밖으로 몸을 닦고 안으로 마음을 닦으면서 호흡으로 단전자리를 닦는 것이라고 쓰여 있다.

이렇게 보면 기 수련 초보자가 '축기'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분명해진다.

기 수련의 초보단계인 축기 과정은 대개 백일축기 (百日築基) 라고 해서 석 달 남짓이다.

백일기도하는 자세로 열심히 공부하라는 뜻이 그 과정 속에 담겨 있다고 일컬어 지기도 한다.

'축기' 다음의 과정은 이른바 '소주천 (小周天)' 이고, 그에 이어서 '대주천 (大周天)' 의 과정으로 접어 드는게 수련의 순서라고 할 수 있다.

이규행 <언론인.현묘학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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