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회창 총재 '제2민주화투쟁' 선언 배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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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한나라당 이회창 (李會昌) 총재의 강도높은 대여 (對與) 투쟁 선언은 당내외를 동시에 겨냥한 다목적 포석이다.

기자회견에서 李총재는 "입으로만 야당을 대접한다고 떠벌렸을 뿐 진정한 파트너로 존중하지 않았다" 며 "독재화와 국정파탄을 막기 위해 제2 민주화 투쟁을 선언하는 것" 이라고 강조했다.

5.3 정부조직법 날치기 처리와 고승덕 (高承德) 파동 등으로 누적된 여당에 대한 불만과 불신이 대여 강경투쟁을 불가피하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실제 6.3 재선거와 16대 총선을 앞두고 당내엔 여당 독주에 대한 불안과 불만이 팽배해 있다.

여권이 정부조직 개편을 강행한 것도 언론과 공직사회 장악을 통해 내년 총선을 유리하게 이끌려는 의도가 있다는 지적이다.

때문에 대여 투쟁 자체가 일단 야당 생존권 사수 차원으로 이해되는 분위기다.

정국을 더이상 혼란에 빠뜨리지 않으려면 야당에 대한 견제를 거두라는 경고 메시지와 함께 다음주 서울.부산에서의 대규모 장외투쟁을 앞두고 '집회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한 사전 정지작업' 의 측면도 있다.

당 내부적으로는 일련의 사태가 李총재의 지도력 문제로 비화되는 것을 사전 차단하려는 의도도 담긴 것 같다.

일부의 비판을 감수하면서까지 "정권퇴진 투쟁" 운운하며 강공으로 몰아붙인 것도 '李총재체제 사수용' 성격이 짙다는 얘기다.

당내에선 비주류를 중심으로 "고승덕 파문과 정부조직법 날치기 처리에 지도부가 미온적으로 대처했다" 는 비판이 끊이지 않고 있는데, 이를 희석시키기 위함이란 것이다.

이밖에 당 일각에서 내각제 조기공론화를 요구하며 이회창체제를 위협하고 있는 것과 무관치 않다는 해석도 있다.

문제는 李총재의 강공이 소기의 성과를 기대할 수 있느냐다.

별다른 소득없이 여야관계만 경색시키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벌써부터 나온다.

당장 여당은 "시민불편을 고려해 파업을 철회한 지하철노조보다 못한 수준" (鄭東泳대변인) 이라며 李총재를 매도하고 있다.

'해묵은 야당전략' 에 불과하다는 비아냥에 이어 "한나라당의 장외투쟁은 국민으로부터 외면당할 것이며, 우리는 집권 여당으로서 할 일만 할 것" (金令培총재권한대행) , "약화된 당내 입지를 대외투쟁으로 강화하려는 술책에 불과하다" (朴洪燁 부대변인) 며 맞대응하지 않겠다는 투다.

여기에 당내에서조차 "야당도 국회 내에서 승부하는 성숙한 정치를 보여야 한다" (趙淳명예총재) 면서 장외투쟁 반대 입장을 분명히 하는 의견이 적잖아 여론의 호응이 여의치 않으면 李총재로선 어렵고 고독한 투쟁을 해야만 하는 처지가 됐다.

이정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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