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진혁칼럼] 정치개혁의 가장 빠른 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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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참으로 알다가도 모를 것이 정치권의 정치개혁 논의다.

큰틀의 정계개편을 하자, 젊은 피를 수혈하자, 선거제도를 바꾸자는 등 벌써 몇달째 떠들고 있지만 실제 나온 알맹이는 하나도 없다.

정치개혁이라면 지역당을 전국정당으로 만들고, 정당의 체질과 운영을 민주화하며, 돈 적게 드는 정치의 방안을 마련하는 것 등이 주요 목표일 것이다.

하나같이 우리가 꼭 해야 할 일들이다.

그러나 어떻게 된 셈인지 정치권이 논의하고 있는 정치개혁방안은 선거제도 뿐이다.

중선거구제가 어떻고, 정당명부제가 어떻고 하는 선거제도만 갖고 논란이 분분하다.

선거제도란 어떤 것이 좋고 어떤 것이 나쁘다는, 반드시 정답 (正答) 이 있는 것도 아니고, 어차피 내년총선이 임박해서야 여야간 험난한 협상끝에 고치더라도 고치게 될 것이다.

선거제도보다 더 본질적이고, 여야간 협상필요도 없는, 결심만 하면 할 수 있는 중대한 개혁과제가 수두룩한데 그런 문제들에 대해선 입도 뻥긋하지 않는다.

우리 정치의 가장 큰 문제점이 무엇인가.

바로 정당이다.

정당이 낙후되고, 비민주적이고 고 (高) 비용형 (型) 인데서 정치도 국회도 선거도 엉망이 되고 있는 것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정치의 주역인 정당을 고치지 않고는 모든 정치개혁이 다 헛일이 될 것이다.

그렇다면 정당개혁을 하자는 소리가 맨 먼저 나와야 하지 않겠는가.

정당개혁은 실질적으로 당을 장악.지배하는 사람이 결심만 한다면 선거제도보다 오히려 간단히 할 수 있다.

두 여당의 경우 '오너' 라고 할 수 있는 DJ와 JP가 결심만 하면 하루아침에 큰 변화를 일으킬 수 있다.

만일 과감하게 공천권을 당원에게 돌려준다고 해보자. 공천권은 당 장악의 가장 큰 칼이다.

그러나 이 공천권에 발목이 잡혀 소속의원들은 할 말이 있어도 말을 못하고 싫어도 보스 앞에 줄을 서야 하는 비민주적 정당풍토의 원흉이 되고 있다.

공천권을 당원에게 돌려주어 지구당대회 같은 데서 후보를 뽑게 하면 획기적인 정당민주화가 이뤄질 것이다.

다음, 각급 당직임명권도 대폭 포기하고 경선제를 확대도입한다고 해보자. 이런 조치 역시 민주화와 토론문화 육성, 자생적 실력자의 등장을 가능케 하는 등 엄청난 정당개혁의 긍정효과가 나올 수 있다.

야당의 경우 이회창 (李會昌) 총재가 실질적 오너라고 할 순 없지만 李총재도 결심만 한다면 야당 역시 큰 규모로 좋은 개혁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야당으로선 이런 개혁을 선도함으로써 여당과의 확실한 차별화를 시도해 봄직하다.

이런 조치들은 지도자들이 결심하기가 어려워서 그렇지 결심만 한다면 복잡한 협상이나 법개정 없이도 언제든지 할 수 있는 일이다.

제대로 된 정당이고 정말 개혁의지가 있다면 각당 내부에서 먼저 이런 정당개혁운동부터 일어나야 하지 않겠는가.

여야는 지금 젊은층 확보를 경쟁하고 있지만 이는 정치개혁과는 상관없는 일이다.

지금과 같은 보스1인체제를 그냥 두고 젊은 피를 수혈해봐야 뼈대는 그냥 두고 옷을 갈아입는 것이나 화장을 고치는 것에 다름아닐 것이다.

지금껏 우리 정당들은 주기적으로 대폭의 인물쇄신을 해왔다.

지난 15대총선에서도 당선자의 45%가 신인이었다.

그러나 15대 들어 정치가 나아진 게 뭔가.

뼈대를 그냥두고 구성원만 이리저리 바꿔봐야 그 모양 그대로일 것은 빤한 일이다.

정말 21세기에 대비해 정치를 개혁하자면 곧 정당의 뼈대를 고치고 바꾸는 작업이 선결과제일 수밖에 없고 그러자면 뼈대에 해당하는 보스체제를 민주체제로 전환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여야 지도자들이 입만 열면 걱정하는 지역주의와 지역당문제도 그렇다.

이 문제의 해결책으로 고작 정당명부제를 들고나오지만 그것으로 이 완강한 지역당들이 과연 전국정당이 될 수 있을까. 정말 지역주의와 지역당을 걱정한다면 서로 자기네 패권지역에서 10%나 20%쯤 공천을 하지 않겠다고 선언할 수는 없는 것일까.

보스들에게 공천권과 인사권을 포기하라는 요구나 공천이 곧 당선을 의미하는 패권지역 일부에 공천자를 내지 말라는 소리가 다 현실정치를 모르는 유치한 아마추어의 소리로 들릴지 모른다.

그러나 우리에게 정치개혁은 정말 절박한 문제이고, 그것은 지도자의 희생과 양보의 결단 없이는 결코 될 수 없는 과제다.

그런 결단을 할 수 있는 배포와 경륜을 가져야 진정한 지도자요, 그런 정치가 곧 큰 정치일 것이다.

언제까지 말로만 정치개혁을 한다면서 선거제도나 들먹이며 본질개혁은 외면할 것인가.

송진혁 논설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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