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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브 프라임發 지진, 9월 위기설로 … 이젠 '출구전략' 찾아라

중앙선데이

입력

"중앙선데이, 디시전메이커를 위한 신문"


“한국인의 30% 이상이 ‘경상수지’라는 어려운 경제용어를 이해하고 있다. 이는 선진국 어느 나라에서도 볼 수 없는 현상이다. 한국인의 위기 극복에 대한 의지를 엿볼 수 있다.” 외환위기 당시 미셸 캉드쉬 국제통화기금(IMF) 총재가 방한해 했던 말이다. 외환위기는 IMF, 국제결제은행(BIS) 비율, 빅딜 같은 생소한 경제용어를 ‘친숙한 단어’로 바꾸어 놓았다. 초유의 경제위기가 국민의 ‘경제 IQ’를 높인 셈이다. 지난 1년간 글로벌 경제위기 역시 숱하게 많은 경제용어를 쏟아냈다.

글로벌 위기의 ‘주범’ 서브프라임 모기지론
신용등급이 낮은 저소득층을 대상으로 고금리로 주택자금을 빌려주는 비우량 주택담보대출. 세계 경제위기의 부실을 부른 ‘주범’으로 지목받는다. 2000년대 들어 돈이 넘쳐나고 저금리가 계속되면서 부동산 가격이 급등하자 모기지론 업체들이 경쟁적으로 서브프라임 대출을 늘렸다. 그러나 집값이 하락세로 돌아서면서 연체율이 급등하기 시작한다. HSBC의 부실 고백, BNP파리바의 펀드 환매 중단이 이어지더니 2007년 4월 뉴센트리파이낸셜이 무너지면서 ‘서브프라임 사태’를 불렀다. 이후 보증업체 패니메이와 프레디맥, 리먼브러더스가 파산하면서 월가는 공황상태에 빠졌다.

‘금융 검투사’ 황영기 추락시킨 CDS
‘신용부도스와프(CDS·Credit Default Swap)’는 신용을 사고파는 파생금융상품이다. CDS 발행 회사는 수수료(프리미엄)를 받고 위험을 부담하는 보험사 비슷한 역할을 한다. 가령 A은행에 B기업이 대출을 받았다면 이를 C금융사가 보증해 주는 형태다. A은행은 프리미엄을 C금융사에 지급하고, C금융사는 B기업이 부도가 났을 때 A은행에 대출금을 대신 갚아주게 된다. 은행은 대출 안정성을 확보하고, 기업은 자금 융통이 쉬워지며, 금융사는 은행에서 받는 수수료 이익을 챙길 수 있다.

그러나 금융사가 파산하면 은행마저 위험에 처할 수 있다. 특히 증권도, 보험도 아니어서 정부 규제를 거의 받지 않았다. 최근 금융위원회가 황영기 KB금융지주 회장에게 ‘직무정지’ 조치를 내린 것도 황 회장이 우리금융지주 회장겸 우리은행장 시절 CDO(부채담보부증권)·CDS 투자로 은행에 1조6000억원대의 손실을 끼친 책임을 물은 것이다.

원화 가치 ‘추락’이 부른 제2의 외환위기설
2007년까지만 해도 한국에서 서브프라임 사태는 남의 나라 얘기였다. 코스피지수는 사상 최초로 2000을 돌파하기도 했다. 그러나 리먼브러더스 파산으로 ‘내 일’이 됐다. 외환시장이 ‘한방’에 무너진 것이다. 달러당 1000원대이던 원화 값은 1500원대 후반까지 떨어졌다. 코스피지수는 800대까지 하락했고 “제2의 외환위기가 오는 것 아니냐”는 공포가 시장을 지배했다. 외국환평형기금채권 10억 달러 발행이 무산되고 외국인 보유채권 만기가 집중 도래하면서 ‘9월 위기설’이 불거지기도 했다.

‘미네르바’ 주가 띄운 한·미 통화 스와프
통화 스와프는 서로 다른 통화를 주고받는 것을 일컫는다. 국가나 기업, 개인 간에 모두 가능하다. 한국은 지난해 10월 30일 미국과 한·미 간 통화 스와프 계약을 체결했다. 한국은행이 미국 연방은행으로부터 300억 달러 한도로 필요할 때 일정 기간 동안 원화를 맡기고 그 액수만큼 달러를 빌려오기로 한 것이다. 이런 일련의 과정에서 인터넷 경제 논객 ‘미네르바’ 박대성씨의 주가가 크게 오르기도 했다. 박씨는 진작부터 원화 가치 급락을 경고하고 한·미·일 통화 스와프 체결을 권고하면서 사이버 공간을 달아오르게 했다. 박씨가 전문대 출신 30대 무직자로 밝혀지면서 또 한번 화제가 됐다. 박씨는 허위사실을 유포한 혐의(전기통신기본법 위반)로 검찰에 전격 체포됐으나 법원에서 무죄가 선고됐다.

선진국 G7 지고, 신흥국 포함한 G20 뜨고
G20은 선진국·신흥개도국 간 의견 교환을 위해 1999년 9월 창설된 세계경제협의기구. 97년 아시아 외환위기 이후 국제 금융 현안 및 특정 지역의 경제위기 재발 방지 등을 논의하기 위해 결성됐다. 미국·일본·영국·독일·프랑스·이탈리아·캐나다의 G7, 한국 등 12개 신흥개도국, 유럽연합(EU) 및 IMF 등으로 구성된다. G7이 경제위기의 진원지로 비판받자 이를 대체할 국제협의기구로 위상이 높아졌다. 전 세계 국내총생산의 90%, 교역의 80%, 인구의 67%를 포괄한다. 금융시장 규제와 당국 간 협력 강화 등에 대해 합의하는 등 글로벌 위기 공조에 머리를 맞대고 있지만 추상적 선언에 그치고 있다는 비판도 있다.

아직도 ‘살아있는 위협’ 더블딥
경기가 침체 후 잠시 회복기를 보이다가 다시 침체에 빠지는 ‘W’ 자 모양의 경제 성장으로, 흔히 ‘이중 하락’ ‘이중 침체’ 등으로 번역된다. 2001년 모건스탠리의 스테판 로치가 처음 쓴 말이다. 경기 침체가 저점에 달한 뒤 곧바로 상승세를 타는 ‘V’자형이나 한동안 침체를 유지하다 서서히 상승세를 타는 ‘U’자형 등과 구별된다. ‘미스터 엔’으로 유명한 사카키바라 에이스케 일본 와세다대 교수,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조셉 스티글리츠 미국 컬럼비아대 교수 등이 “세계 경제가 다시 한번 심각한 위축을 겪을 가능성이 크다”고 경고한 바 있다.

정상으로 돌아오는 ‘험난한 길’ 출구전략
본래는 군사용어다. 1970년대 미국이 베트남 전쟁에서 철수할 때 병력과 물자의 손실을 최소화하면서 빠져나오는 전략을 ‘출구전략(Exit Plan)’이라고 부른 것에서 유래했다. 최근엔 세계 경제가 회복하면서 인플레이션과 자산 거품 등 부작용을 최소화하며 위기 과정에서 쏟아냈던 ‘비상조치’를 정상화하는 일련의 통화·재정 정책을 가리키는 경제용어가 됐다. 이달 초 영국 런던에서 열린 G20 재무장관 회의에서 각국 장관들은 당장은 출구전략을 펼칠 때가 아니라는 데 의견을 같이했다.

이상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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