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조합원의 파업 8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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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파업 8일만에 작업장으로 돌아온 지하철공사 군자차량기지 검수원 朴모 (34) 씨는 착잡하다.

그는 27일 오전 1시 동료 4백여명과 함께 단체로 복귀서명을 마쳤다.

공사측이 발표한 복귀시한을 넘긴 시점이다.

" '무단결근 7일이면 직권면직' 이라는 사규를 내세워 '칼' 을 휘두른다는데…. " 朴씨는 한숨을 토하며 철로에 앉아서 담배를 꺼내 물었다.

지하철 노조가 파업에 돌입한 19일, 그는 비상금 3만원과 두툼한 점퍼 하나만을 걸치고 집을 나섰다.

이날 바로 서울대 농성을 시작했다.

학교측 항의로 학생회관에서 쫓겨나 비닐천막에서 새우잠을 잤다.

관악산 골짜기의 추위를 이기려고 동료들과 매일밤 소주 한병씩을 먹었다.

결혼 5년째인 아내와 통화할 때는 마음이 흔들렸다.

공사측에서 수시로 집에 전화를 걸어 "남편이 잘리게 내버려 둘 것이냐" 고 회유한 탓이었다.

아내는 "빨리 돌아가야 당신이라도 살아남지 않느냐" 고 울면서 호소했다.

세살배기 아들의 목소리를 들을 때는 복귀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그래도 "구조조정을 못 막으면 내가 잘릴 수도 있다" 는 생각에 투쟁의지를 키웠다.

21일 서울시와 정부는 '원칙 없는 협상은 하지 않겠다' 며 강경 의지를 밝혔다.

"지난 89, 94년 파업 때도 서울시는 결국 지하철 노조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이번도 예외가 아닐 거라고 생각했죠. " 파업 4일째인 22일 지하철 운행이 단축되면서 시민들의 항의가 빗발쳤다.

"서민층의 '고통전담' 을 막아보겠다고 지하철 노조가 앞장서는 것을 시민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게 지금도 섭섭합니다. " 24일 밤 경찰이 서울대로 진입한다는 얘기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동료들과 서둘러 짐을 꾸려 관악산을 빠져 나갔다.

"그게 잘못이었습니다. 당당히 맞서지도 못하고 잘못된 정보에 투쟁의 대오가 흐트러져 버렸습니다. " 朴씨는 25일 동료 5명과 온종일 거리를 헤매다 이날 밤 어두운 관악산을 두 시간이나 헤치고 농성장으로 돌아왔다.

"26일 아침 한국통신 노조의 파업 철회 소식이 들리면서 조합원 동료들이 심하게 동요하기 시작했습니다. " 그리고 이날 저녁 집행부로부터 '파업을 철회하고 작업에 복귀한다' 는 비보가 전해졌다.

26일 오후 9시40분 군자 차량기지 정문 앞에서 朴씨는 "경찰이 기지로부터 떠나야 복귀서명을 하겠다" 며 동료 조합원 4백여명과 두 시간 동안 마지막 투쟁을 벌였다.

'시민의 발을 볼모로 파업을 일으켰다' 는 일방적인 비판을 받아온 지하철 노조의 마지막 자존심을 지키고 싶었던 것. 하지만 이미 끝난 싸움이었다.

"지금도 우리의 파업이 잘못됐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규찰대의 통제 때문에 복귀를 못한 것도 아니었고요. " 입사 5년차에 월 수령액이 1백만원도 안된다는 朴씨는 "나는 잘릴 수 없다" 는 말을 자꾸만 되뇌었다.

성시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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