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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아이들이 평생 살아도 될 나라”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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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선데이, 디시전메이커를 위한 신문"

 한국인이 일본으로 귀화하는 사례는 쉽게 찾을 수 있다. 하지만 일본인이 한국으로 귀화하는 경우는 극히 드문일이다. 한국에서 20년을 산 일본인 통ㆍ번역사 부부가 다섯자녀와 함께 귀화를 결심했다. 마사시 일가족 7명의 귀화 스토리를 중앙SUNDAY가 들어봤다. 다음은 기사 전문.

마사시(왼쪽) 가족이 12일 자택 부근에서 산책을 하고 있다. 오른쪽부터 부인 가즈꼬, 장녀 사또에, 장남 구니히로, 차남 다이끼, 차녀 아리나, 3남 다쯔야. 대전=최정동 기자

자신이 태어난 나라를 버리고 다른 나라 국민이 되는 귀화(歸化)는 쉬운 일이 아니다. 한국인이 일본으로 귀화하는 사례는 쉽게 찾을 수 있다. 재일동포들이 살아남기 위해 잡는 지푸라기가 ‘귀화’였다. 반대 경우인 일본인이 한국인이 되는 것은 극히 드문 일이다. 귀화와 관련된 통계를 생산하는 법무부조차 별도로 분류하지 않을 정도다. 마사시(왼쪽) 가족이 12일 자택 부근에서 산책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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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도 출입국·외국인정책통계연보(법무부 발간)의 한국 국적취득 현황에는 귀화자의 출신국을 중국·필리핀·베트남·몽골·파키스탄·태국·우즈베키스탄 등 7개 국가와 기타 국가로 분류했다. 선진국보다 아시아 국가 출신이 절대 다수다. 독도 연구가로서 ‘독도는 한국 땅’임을 학문적으로 입증하는 데 힘써온 호사카 유지 세종대 교수 정도가 그나마 알려진 귀화인이다. 중앙SUNDAY는 최근 법무부에 부부와 자녀 5명 등 가족 7명이 한국 국적 취득을 신청한 야사노세 마사시 가족을 12일 만나 사연을 들었다.

대전시 유성구 봉명동에 사는 야나노세 마사시(47)와 가즈꼬(46) 부부가 한국에 온 건 1989년이다. 결혼 1년차였던 두 사람은 청와대 근처 서울 종로구 효자동에 보금자리를 마련했다. 마사시는 처음엔 다단계 판매 사업에 가입해 큰 조직을 거느리기도 했지만 안정성이 없어 그만뒀다. 일본어 통·번역 서비스 회사를 아내와 같이 차리고 사업자등록까지 했다. 한국에서 외환위기를 겪었고 몇 년 전 조경회사 일을 맡으면서 공사 현장이 있던 대전으로 이사했다. 마사시 부부는 만 20년째 한국에서 살면서 자녀 5명을 이곳서 낳고 길렀다. 이들에게 한국은 가깝고 편한 나라지만 아직은 여전히 외국이다. ‘한국 속의 일본인’으로 살아왔기 때문이다. 여러 가지가 불편했지만 국적을 바꾸는 건 생각조차 못했다. 이들의 마음을 움직인 건 20년이라는 세월과 그 사이에 태어난 5명의 자녀였다.

“결혼 직후 한국에 가자고 한 것도, 귀화를 하자고 얘기한 것도 아내였어요. 조경회사 일이 출장이 잦아요. 아내에게 미안한 것도 있고 해서 따르기로 한 거죠. 결심하기까지 고민 많이 했지요.”(마사시)

“한국에 오자고 한 건 한국어와 한국문화를 배우고 싶어서였어요. 종교적 이유도 있었고요. 특히 한국역사는 정말 재밌어요. 귀화요? 그건 애들 때문이죠. 또 평생을 이곳에서 한국인으로 살아도 되겠다는 판단이 섰기 때문이기도 하고요. 솔직히 지금 일본으로 애들을 데리고 가서 정착하기도 어렵고요. 살면 살수록 재밌고 신나는 나라가 한국인 것 같아요.”(가즈꼬)

마사시 부부가 법무부에 귀화 신청을 한 건 2008년 2월이다. 이들은 한국에 특별한 공로가 있는 사람이 대상인 특별귀화나 간이(결혼)귀화 대상이 아니다. 아무 연고 없이 한국인이 되려고 하는 일반귀화 대상자다. 마사시 부부는 최근 법무부로부터 “5만 건이나 밀려 있어서 늦어졌다”는 해명과 함께 다음 달 10일 필기시험을 보라는 연락을 받았다. 신청 1년8개월 만에 찾아온 기회다. 법무부 출입국·외국인 정책본부의 김기영(국적 담당) 계장은 “일본인 가족 전원이 한국 귀화를 신청한 건 처음”이라며 “마사시 부부는 한국어가 유창한 데다 부부 중 한 명만 합격하면 되기 때문에 무난히 통과할 것”이라고 말했다.

조강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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