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제개혁 아직 멀었다] 2. 아직도 옥죄는 기업활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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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풀린 것은 많은 듯한데 크게 나아졌다는 느낌이 안듭니다. " LG전자의 한 임원은 기업규제개혁의 현황을 이렇게 요약했다.

겹겹이 둘러쳐져 있던 기업규제가 차례차례 풀리고 있지만 그 효과를 되돌리는 복병 또한 여기저기 숱하게 도사리고 있다는 얘기다.

◇ 자의적인 규제 = 지난해말 투자자문회사를 세운 金모 (45.서울개포동) 씨는 '법 따로, 현실 따로' 라는 행정현장을 절절히 체험했다.

허가제나 다름없는 신고제도의 모순에 휘말렸던 것. 최근 바뀐 투자자문사 설립요건은 '전문요원 3명 이상, 자본금은 10억원 이상' 이면 등록만으로 회사설립이 가능하게 돼 있다.

그러나 접수단계부터 일은 뒤틀렸다.

재경부 담당주사는 "왜 이 일을 하려 하느냐" 부터 따졌다.

또 임직원의 인감증명이 빠졌다고 해 서류를 보완, 간신히 접수시켰다.

다음 장애물은 금융감독원. 실사작업에 필요한 서류만 해도 임직원 의료보험증 사본.예금잔액 증명서 등 12가지다.

담당직원은 심지어 "사람은 다섯인데 컴퓨터가 왜 세대뿐이냐" 고도 따졌다.

우여곡절 끝에 통상 처리기한 (21일) 보다 훨씬 긴 두달 만에 등록을 마쳤다.

삼환기업은 지난해말 구미시 부곡동 고속도로의 확장공사 성토에 필요한 9만㎡의 토석채취 허가신청서를 구미시에 냈다.

경북도청에서 민원심의를 거쳐 적정하다고 판단한 사안이었다.

그러나 구미시는 고속도로 확장구간 전체 성토량에 대한 토취장 현황과 토량수급계획서를 별도로 요구해 삼환측은 보완서류를 냈다.

그러자 시는 도시미관상 필요하다는 이유로 신청지역에 있지 않은 토지에 대해서는 적정지역을 확보하고 이를 위한 설계서를 제출하라고 추가로 요구했다.

그리곤 1월초 삼환측이 이를 지키지 않았다는 이유로 신청서를 반려했다가 경북도 감사관실의 지적을 받았다.

◇ 무늬만 규제완화 = 재정경제부는 외국법인 소속 외국인들에 대해 부가가치세 환급제도를 시행한다고 지난해 발표했다.

이들이 음식값이나 호텔숙박.광고.부동산임대용역 등에 지불한 금액에 포함된 부가세를 돌려받을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 제도의 골자였다.

정부의 이 방침을 믿고 한 외국계 금융기관은 국내 회계사를 고용, 97년도분 환급절차를 밟았다.

이들이 지난해 하반기에 낸 부가세는 모두 1천만원. 이중 환급대상 세액은 1백50만원 정도라는 계산이 나왔다.

헛수고였다.

돌려받은 액수는 회계사 고용비 1백만원에도 못미치는 50만원뿐. 고객들을 위해 호텔에서 약식으로 연 파티에 쓴 돈은 접대비에 해당되므로 환급대상이 아니라는 국세청의 유권해석 때문이었다.

"돈이 문제가 아닙니다. 최소한 규정을 명확히 해 혼란을 막았어야 합니다.

" 이 금융기관 대표의 말이다. 정부는 자연녹지 안에 대형 할인점을 세울 수 있도록 허용했다.

그러나 현실은 역시 다르다.

부지 면적이 최대 3천평으로 제한되는데 건폐율 20%, 용적률 1백%의 제약사항을 지키자면 매장면적은 고작해야 6백평이다.

E마트가 설정한 할인점 최소 규모 8백평에도 못미친다.

또 취약한 도시기반시설을 자체 부담으로 갖추다 보면 땅값은 싸더라도 총투입비용이 상업용지에 비해 결코 싸다고 할 수 없다.

때문에 자연녹지에 매장이 세워진 것은 청주.원주 두군데밖에 없다.

중복규제도 여전하다.

고압가스 시설은 산업안전보건법과 고압가스안전관리법에 의해 한국가스안전공사와 산업안전공단으로부터 같은 내용의 점검을 중복해 받는다.

노동부와 산업자원부는 업체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지난 97년 4월부터 통합심사를 하기로 했으나 실제로는 두 기관이 예전처럼 따로 공장을 찾아와 점검하고 있다.

이수화학 온산공장 관계자는 "달라진 게 전혀 없다" 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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