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화 김환기 25주기 맞아 서울 세곳서 대규모 회고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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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한국 추상미술의 거장 수화 (樹話) 김환기 (金煥基.1913~74) 25주기를 맞아 환기미술관 (02 - 391 - 7701).갤러리 현대 (02 - 734 - 6111).원화랑 (02 - 514 - 3439) 등 세 군데서 동시에 다음달 4~30일 (환기는 7월4일까지) 대규모 회고전을 마련한다.

지금까지 상파울루 비엔날레 (75년) 를 포함, 수차례 국내외 회고전을 통해 그의 작품들이 소개됐지만 이번처럼 50년대 초기작부터 뇌일혈로 작고한 70년대 뉴욕시절까지를 두루 망라하는 전시는 보기 드물었다.

나무를 좋아해 호를 수화라 지었던 그답게 '하늘과 땅' '10만개의 점' 등 미공개 뉴욕시대 대표작에서도 그의 나무들의 속삭임처럼 여리고 섬세한 감성을 새삼 실감할 수 있다.

혹자는 수화의 그림을 두고 "너무 달콤해 많이 먹으면 질리는 초콜릿 같다" 고도 평하고 혹자는 역사의식이 결여된 모더니즘적 개성을 비판하기도 한다.

또 그에겐 이중섭과 박수근을 따라다니는 불멸의 신화나 입지전도 없다.

그럼에도 그는 96년 월간미술에서 실시한 현역 미술인 54명이 뽑은 '오늘의 한국작가' 에서 작고작가.영향을 끼친 작가 부문 각각 1위를 차지했다.

자연과의 대화에서 오는 우리 정서의 양식화. 모더니즘의 그릇에 담아낸 한국적 서정. 이것이 추측해볼 수 있는 인기 요인이다.

유영국.이규상과 함께 '신사실파' 를 만들어 한국 추상미술의 문을 직접 연 주역이지만, 결국 수화를 지금까지 미술애호가들의 뇌리에 남긴 것은 작품의 배면 (背面)에 흐르는 부드럽고 애틋한 감정의 자락이 아니었을까.

이러한 정신은 산과 달, 학과 매화 등 문인화에 가까운 소재를 즐겨 쓰던 초기부터 앵포르멜의 영향을 받기 시작한 파리시대, 그리고 형태를 버리고 선과 점으로 단순화한 뉴욕시대에 이르기까지 일관되게 흐르고 있다.

수화 하면 푸른색.노란색 등 화려한 색채의 마술사이기도 하지만 이번 전시에선 작고하기 얼마 전 시도한 회청색.검은색의 점화들도 구경할 수 있다.

특히 1970년 수화가 부산 피난시절 교분을 나눴던 시인 김광균의 시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에서 받은 감흥을 무수한 별을 수놓듯 점으로 표현한 동명의 작품도 30년만에 일반 공개된다.

"이렇게 많은 중에서/별 하나가 나를 내려다본다/이렇게 많은 사람 중에서/그 별 하나를 쳐다본다/밤이 깊을수록/별은 밝음 속에서/사라지고/나는 어둠 속에 사라진다/이렇게 정다운/너 하나 나 하나는/어디서 무엇이 되어/다시 만나랴" .

수화는 뉴욕 거주 당시 지인 (知人) 들에 대한 그리움을 이 작품에서 점 하나 하나에 아로새겼던 것이다.

기선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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