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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인터뷰] 청와대 안주인 이희호 여사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4면

이희호 (李姬鎬) 여사는 너무 오랫동안 '야당투사 김대중 (金大中) 의 아내' 로만 기억돼 왔다.

그러나 그 자신도 평생을 여성과 소외된 계층의 권익과 인권신장을 위해 일해 온 여성.사회 운동가다.

퍼스트 레이디가 된 후 가장 먼저 가진 직책이 결식아동을 돕기 위한 사단법인 '사랑의 친구들' 명예회장인 게 우연은 아니다.

그를 만나본 사람이면 그의 넉넉한 인품과 사려깊음, 그리고 분별력 있는 언동에 매료된다.

이런 모습은 청와대 안주인이 된 지금도 마찬가지다.

인간 이희호를 만나게 되기 때문이다.

그에겐 "주방직원들이 모양새 내는데 치중, 과일살을 너무 많이 깎아낸다" 고 불만을 털어놓는 소박함이 있다.

끼니를 거르는 어린이들을 보면 "내 아이처럼 가슴이 뭉클해진다" 며 눈시울을 적시는 보통 어머니이기도 하다.

"국익을 위해서라면 대통령부인도 적극 나서야 한다" 는 적극적 역할론자인 李여사는 "대통령이 일일이 돌보지 못하는 소외된 이웃을 돕는 일에 역점을 두겠다" 고 포부를 밝혔다.

그러면서 "어떤 퍼스트 레이디로 기억되느냐보다는 매일 최선을 다하며 사는 게 중요하다" 고 강조했다.

그를 만난 건 지난 21일 청와대 접견실. 인터뷰는 예정된 시간을 10여분 넘겨 1시간 가까이 이어졌다.

[만난 사람= 정치부 이정민 기자]

- 청와대에 들어오신 지 1년이 넘었습니다. 요즘 생활은 어떠십니까.

"사저 생활에 비해 자유롭지 못해요. 다른 것은 불편을 못느끼는데 식사가 잘 맞지 않아요. 가정집에선 한꺼번에 음식을 차려놓고 먹지만 여기선 호텔에서 먹는 것 같이 하나를 먹고 한참 기다려야 또 하나가 나와요. 기다리려면 어떨 땐 배가 고프기도 하고. 호텔에서 사는 것처럼 익숙지가 않아요. 그렇지만 불편하다고 생각지 않고 늘 감사하며 생활하고 있어요. "

- 대통령과 '몰래 나들이' 를 해본 적이 있습니까.

"대통령은 짬을 못내지만 저는 세번 가봤어요. 냉면 생각이 나서 사다 먹기도 했지만 그맛이 안나요. 친하게 지내던 국회의원 부인들과, 또 곧 국내에 설립될 국제백신연구소 관계자들과 함께 시내 음식점에 가 냉면을 먹은 적이 있어요. "

- 청와대에 계시면서 하고 싶은 사업은 무엇입니까.

"실업문제가 큰 일이고…. 결식아동 문제와 주부가장 실직 문제는 어떻게든 해결돼야 합니다. 나라의 장래를 책임질 아이들이 못먹는다는 것은 큰 일이에요. 실직 여가장을 돕기 위해 저의 책을 출판해 보태기도 해보고 바자에 소장품을 내놓는 등 노력하고 있지만 아직도 많이 부족합니다. "

- '사랑의 친구들' 은 좋은 사업이지만 李여사가 모금에 관여한다는 오해와 구설수를 불러올 수도 있는데요.

"저는 모금을 비롯한 운영엔 전혀 관여하지 않습니다. '사랑의 친구들' 은 모금과 관련해선 추호의 오해가 없도록 하는 것으로 압니다. "

- 어떤 퍼스트 레이디로 기억되길 바랍니까.

"가장 중요한 것은 대통령이 맘 편히 국정운영에 전념할 수 있도록 돕는 일입니다. 그러나 국가 지도자의 부인도 국익에 도움이 되고 국민에게 이익이 되는 일이라면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대통령의 국정 수행을 돕는 일 외에도 지금까지 해오던 대로 소외된 분들을 지원하는 일, 여성문제 등을 위해 지속적으로 활동해 나갈 것입니다. "

- 대통령과는 충분한 대화를 나누십니까.

"전보다 얘기할 시간이 없어요. 특히 하루 일정이 별도로 진행되는 날엔 밤 늦게야 얼굴을 보게 돼요. 그래도 '이 말은 꼭 전해드려야겠다' 하는 얘기는 편지를 써 전해드리기도 합니다. "

- 대통령이 요즘 가장 신경쓰는 일은 무엇입니까.

"역시 경제 문제죠. 경제난이 어느 정도 극복되는 데 대해선 보람을 느끼는 것 같은데 아직도 실업문제.노조 파업 문제 등 한시도 마음을 놓지 못하고 늘 나라일 걱정입니다. "

- 항간엔 '대통령이 시중 여론이나 민심을 충분히 듣지 못한다' 는 지적도 있습니다. 내조자로서 여론을 있는 그대로 전하는 것도 중요한 임무가 아닐까요.

"신문에서 제일 정보를 많이 얻어요. 신문은 빼놓지 않고 봅니다. 일일이 다 보지 못하면 비서가 빠른 속도로 읽어드리기도 합니다. 그래도 속속들이 다 볼 수 없어 제가 사회면을 보고 전달해드리는데, 이것이 꽤 참고가 돼요. 방송뉴스도 놓치지 않고 보려고 해요. 또 제가 일과 관계없는 외부 사람들을 많이 접하니까 밖의 소식을 가감없이 전해드리려 합니다. 직접 말씀 못드리면 적어서라도 드리고, 대통령도 그걸 참고합니다. "

- 야당시절 대통령은 중대 사안을 꼭 李여사와 상의하곤 했다는데, 요즘은 어떠십니까.

"국정 전부를 논의하는 것은 아니지만 여성문제를 포함한 몇가지 사안에 대해선 제 의견을 묻습니다. "

- 내각제 개헌 문제 같은 것도 그렇습니까.

(손을 내저으며) "그건 깜깜소식이에요. 내각제 문제는 두분 (김대중 대통령과 김종필 총리) 이 결정할 문제고 국민이 결정할 문제니까요. 내가 이래라 저래라 할 수 없죠. 또 나중엔 국민이 뭘 원하는지가 문제 아니겠어요. "

- 金총리 부인 박영옥 (朴榮玉) 여사 등 여권 인사들의 부인과는 자주 만나십니까.

"1년에 한 두번 정도 공식 모임에서 만나는 것 외엔 따로 만나는 일이 없습니다. 장관 부인들도 따로 만나지 않습니다. "

- '고관집 절도 사건' 으로 나라가 어수선한데요. 가신이나 친인척의 국정 관여에 대해 대통령의 특별지침이나 당부가 있었습니까.

" (대통령은) 언제든지 조심하라는 말씀입니다. 야당하면서 어려움을 많이 겪었지만 친인척이나 형제들 문제는 오히려 야당생활할 때보다 더 힘이 들어요. 사람도 가려서 만나고 행동거지를 조심해야 한다고 항상 말씀하시죠. 지난 20일에도 미국에서 잠시 들르러 온 막내 (弘傑씨) 와 아침식사를 같이 하면서 '너 사람 만나는 거 조심하라' 고 당부하시더군요. 행여 실수가 있든지, 말썽을 빚든지 할까 봐 주의를 주는 거죠. "

- 가족.친지들과의 만남이 전처럼 수월하진 않을텐데요.

"아무래도 쉽지 않아요. 손자들이 보고 싶어도 찾아가기 어렵고 아이들이 청와대로 오는 것도 쉽지 않습니다. 공식 일정이 없는 휴일에 가족들이 함께 모이곤 합니다. "

- 대통령께서 여성의 지위 향상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보십니까.

"남녀차별 금지법과 여성 경제인을 지원하는 법률을 제정한 것은 큰 진전이라고 봅니다. 기회있을 때마다 여성지도자는 물론 자원봉사자.가정주부 등 여성들을 격려하기 위한 자리를 마련하고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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