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골’ 만들고 싶은 뼈 박사 환자에겐 부드러운 남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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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태(母胎)신앙을 가진 강무일(가톨릭의대 내분비내과) 교수의 세례명은 ‘루가’다. 신약성서 중 ‘루가의 복음서’와 ‘사도행전’을 저술한 루가는 원래 의사 출신이다. 그래서 강 교수는 어릴 때부터 병든 환자를 치료하는 의사가 돼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하는 일을 자신의 소명으로 생각했다. 가톨릭 의대에 진학한 것도 그런 이유다. 의사가 된 이후에도 항상 ‘하느님이 도와주실 것’이라는 믿음과 기도로 환자를 진료한다. 서울성모병원 8층 연구실에서 만난 그는 온화한 미소로 기자를 맞이했다.

심장병·암 분야서 내분비 분야로

“내과 의사가 된 특별한 이유가 있습니까?”(기자)

“대학 졸업 후 군의관 생활을 하면서 환자를 진료하기 시작했는데 내과 환자가 가장 많았어요. 환자가 많을수록 의사가 할 일도 많겠다 싶어 제대 후 내과를 지망했습니다.”(강 교수)

그는 처음엔 내과 중에서도 심장병이나 암을 치료하는 전문가가 돼 환자의 생명을 최대한 많이 구하는 의사가 되고자 했다. 하지만 막상 대학병원에 근무하다 보니 당시만 해도 암이나 심장병은 열심히 치료해도 결국엔 세상을 등지는 환자가 너무 많았다.

그는 심근경색으로 입원했던 60대 남성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어려운 가정환경을 피눈물 나는 노력으로 극복했던 환자는 주치의였던 그를 볼 때마다 “이제 살 만하다 싶었는데 죽게 됐다”며 “이렇게 죽기엔 너무 억울한 인생이니 꼭 살려 달라”고 매달렸다.

“심장이 망가져 혈액순환이 제대로 안 되다 보니 폐에 물이 가득 차 입원기간 내내 앉아서 지냈던 환자였어요. 지금 같으면 곧바로 막힌 혈관을 뚫어주는 치료로 생명을 구할 수가 있었을 텐데…”.물론 당시엔 뾰족한 치료법이 없어 그는 환자의 사망선고를 할 때까지 힘들어 하는 모습을 마냥 지켜봐야만 해다.

환자가 죽어 가는 모습을 보는 게 너무 가슴 아팠던 그는 이 환자의 사망을 계기로 심장병이나 암 치료 대신 ‘삶의 질’을 높여주는 내분비 분야를 전공하기로 결심했다.

“내분비 질환도 위기의 순간이 오면 생명이 위험한 환자는 많아요. 하지만 호르몬 치료를 잘하면 극적으로 좋아지는 환자도 많습니다.” (강 교수)

1991년 교수로 임용된 직후 스트레스 호르몬이 과다 분비돼 얼굴이 보름달처럼 부어 오르면서 온몸의 뼈가 부러지는 41세 난치병 환자를 살린 기억은 지금 생각해도 마음이 훈훈해진다.

“환자를 진료한 첫날부터 몇 달간 집요하게 스트레스 호르몬이 어디에서, 왜 나오는지를 추적했어요. 결국엔 뇌(뇌하수체)에 생기는 종양이 인두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찾아냈죠. 종양을 제거한 뒤 환자는 회복했습니다.”(강 교수) 이 환자는 국제학회에 보고됐을 정도로 희귀한 경우다.

뼈 이식 전문가로 거듭나

학자로서 그의 주된 관심사는 뼈의 대사를 연구하는 일이다. 이를 위해 강 교수는 1995년부터 2년간 미국에 연수해 이식수술을 받은 후 뼈가 약해진 환자를 치료하는 법을 연구했다.

1997년 귀국하자마자 그는 곧바로 골수 이식 후 손상되는 뼈의 소실을 막는 치료 프로토콜을 국내 최초로 개발했고, 환자 치료에 적용해 좋은 결과를 얻었다. 현재 강 교수는 이 분야에 관한 한 세계적인 대가다.

뼈 박사인 강 교수는 요즈음 청년들의 뼈가 약해서 걱정스럽다. “뼈는 어릴 때부터 30대 초반까지 잘 먹고 운동해서 강골로 만들어야 해요. 운동도 제대로 안 하고 인스턴트 식품·청량음료·카페인 음료를 즐기다 보면 체격은 커 보여도 뼈 밀도가 낮습니다. 고령화 시대에 질 높은 삶을 위한 필수 요건이 뼈 건강인데… 실제로 노인은 대퇴골 골절로 1년 이내에 20%가 사망하고 50% 이상은 장애가 남거든요. 어릴 때부터 부지런히 운동하고 멸치·우유·유제품 등 칼슘이 많은 음식을 많이 먹어야 해요. 또 칼슘 대사에 필요한 비타민 D가 제대로 만들어지도록 15~20분간은 피부를 햇볕에 쪼여줘야 합니다.”

뼈 건강의 명의인 강무일 교수는 독자들에게 이 내용을 꼭 전해달라고 반복해서 부탁했다.

글=황세희 의학전문기자·의사, 사진=신인섭 기자

강무일 교수 프로필

▶1982년: 가톨릭의대 졸업

▶1986~1989년: 강남성모병원 내과 전공의 및 전문의 취득

▶1989~1991년: 강남성모병원 내분비내과 전임의

▶1991년~현재 : 가톨릭의대 내과 교수

▶1992년: 가톨릭의대 박사학위 취득

▶1995~1997년: 미국 매사추세츠의대 및 브링엄 앤드 우먼즈 병원(하버드의대 부속병원) 연수

▶논문: 2000년 SCI논문 『Bone』에 게재한 ‘The short-term changes of bone mineral metabolism’등 29편의 SCI 논문 포함, 국내외

학술지에 100편 논문 게재



박일형 교수는 이래서 추천했다
“따뜻함으로 환자 불안감 녹이죠”

“대학병원에서 교수 직함을 가진 의사 중에도 권위를 내세우지 않으면서 환자와 좋은 관계를 맺는 의사들이 많아요. 정말 따뜻한 마음으로 환자를 가족처럼 생각하면서 치료하는 의사들이지요.

그런데 강무일 교수는 여기에 2%가 더해진 느낌이에요. 단적인 예를 들면 강 교수는 미국에서 연수하는 동안 진료했던 환자로부터 전화 상담을 받기도 했다고 하더라고요. 그건 의사-환자 간에 좋은 관계를 넘어 무한한 신뢰감이 형성된 사이에서만 가능한 일이죠. 강 교수가 환자를 어떤 태도로 대하는지를 알 수 있지 않나요.”

경북대의대 정형외과 박일형(사진) 교수는 강무일 교수를 명의로 추천한 배경을 이렇게 설명한다.

지난 10년간 강 교수와 골대사학회 일을 함께 했던 박 교수는 강 교수를 한마디로 “놀랄 만한 부드러움으로 상대방을 압도하는 능력이 있는 사람”으로 평가한다. 동료 의사를 만날 때나 학회 업무를 보는 다른 분야 직원을 대할 때나 말투와 태도가 한결같다는 것이다.

“강 교수는 환자를 진료할 때 부드러움에 따뜻함까지 더해져 환자의 불안감을 녹이지요. 내분비내과 환자들은 대부분 만성병 때문에 평생 정기적으로 담당 의사의 관리와 치료를 받아야 합니다. 자신의 몸을 평생 맡겨야 하는 의사가 실력이 좋은 것은 물론이고 따뜻한 환대까지 해준다면 그보다 더 만족스러운 상황은 없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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