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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훈, 극심한 감량 고통 이기고 IBO 수퍼페더급 제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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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9면

김지훈이 복싱 IBO 수퍼페더급 타이틀매치에서 졸라니 마랄리(남아공)를 꺾은 뒤 기뻐하고 있다. [요하네스버그=연합뉴스]

베테랑 복서 졸라니 마랄리(32·남아프리카공화국)의 펀치는 역시 빠르고 묵직했다. 김지훈(22)은 6라운드까지 계속 밀렸다. 그러나 젊은 도전자의 눈빛만은 살아 있었다. 라운드가 거듭될수록 김지훈의 펀치는 날카로워졌고, 마랄리의 스피드는 둔해졌다.

김지훈이 13일(한국시간) 남아프리카공화국 요하네스버그에서 열린 국제복싱기구(IBO) 수퍼페더급(58.97㎏ 이하) 타이틀매치에서 마랄리를 9라운드 KO로 꺾고 왕좌에 올랐다. 최근 9경기 연속 KO승이다. 이로써 그는 2007년 7월 격투기 전향을 위해 세계복싱협회(WBC) 페더급 챔피언 벨트를 반납한 지인진(36) 이후 한국 선수로는 2년2개월 만에 첫 세계챔피언이 됐다.

◆가뭄에 핀 들꽃

김지훈은 신일정보산업고(경기도 일산) 시절이던 2003년 김형열(55) 관장이 운영하는 주엽체육관을 우연히 찾았다. 복싱을 하겠다는 친구를 따라갔다가 관장의 눈에 띈 것이다. 김 관장은 김지훈의 뛰어난 신체 조건(키 1m76㎝·양팔 길이 1m88㎝)과 강하면서도 차분한 눈빛에 이끌려 후원자를 자처했다. 그러나 김지훈은 이내 글러브를 벗었다. 그는 “힘들고 재미가 없어 친구랑 같이 그만뒀다”고 말했다. 김 관장은 몇 달 만에 “재능이 너무 아깝다”며 그를 다시 링으로 불러들였다.

키울수록 물건이었다. 무엇보다 맞는 것도, 지는 것도 두려워하지 않았다. 김 관장은 그를 보고 왕년의 문성길이 떠올랐다고 말했다.

유망주들은 대개 전적 관리를 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김지훈의 생각은 달랐다. “목표는 세계챔피언이다. 젊을 때 맞아 가면서 배워야 내게 도움이 된다.” 그의 전적 19승(16KO)5패 중 패배는 데뷔 초에 당한 것들이다. 김지훈은 2005년 9월 한국 페더급 챔피언에 올랐고, 1년 뒤 범아시아복싱협회(PABA) 페더급 챔피언이 됐다.

김지훈은 ‘미래의 세계챔피언’ 재목으로 꼽혔지만 국내의 척박한 복싱 환경이 그를 키워 내지 못했다. 세계챔피언도 대전료 1000만원을 받지 못하는데 유망주에게 투자할 업체는 없었다. 대신 미국의 유명 프로모션이 김지훈을 주목했다. 덕분에 2007년 한국 선수로는 처음으로 배너 프로모션과 계약했다. 그는 지난해 정상급 복서 코바 고골라지(35·그루지야)를 1회 KO로 쓰러뜨리며 세계 무대에 이름을 알렸다.

◆체중 감량의 고통을 이겨 내고

평소 체중이 67㎏인 그는 7~8㎏ 가까이 감량한 채 링에 서고 있다. “체중 감량을 해 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밥도 아닌 물을 먹는 꿈을 꿀 때가 많다”고 할 만큼 그는 극한의 고통과 싸우고 있다. 지난 6일 남아공에 도착한 이후 감량을 위해 매끼 즉석 쌀밥 한두 숟가락과 찐 마늘 두 쪽, 계란 프라이 하나로 버텼다.

김지훈은 한국인 통산 44번째 세계챔피언이다. 그는 “내가 뛰는 체급에서 최고의 선수로 인정받고 싶다. 진정한 강자가 되겠다”고 각오를 밝혔다. “이번 대전을 통해 복싱이라는 스포츠가 평소 흘린 땀과 피의 양에 결과가 비례한다는 진리를 새삼 깨달았다”고 말했다.

이어 “미약하지만 이번에 제가 타이틀을 획득함으로써 복싱에 대한 관심이 되살아나고, 한국에서 열심히 훈련하는 선수들이 국민으로부터 사랑받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고 희망했다. 

김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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