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반도체 빅딜 이후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현대와 LG그룹간의 반도체통합협상이 사실상 타결됐다.

아직 대금지급방법 등을 포함한 기술적인 문제를 남겨두고 있지만 핵심쟁점인 인수가격에 합의한 만큼 완전타결은 시간문제로 보인다.

반도체빅딜은 현대와 LG 양사의 자산이 20조원에 육박하는 데다 두 그룹이 모두 이를 주력사업으로 점찍어놓아 '빅딜 중의 빅딜' 로 간주돼왔다.

그동안 자율 아닌 '타율빅딜' 의 과정에서 무리와 부작용, 그리고 양사간의 깊은 갈등의 골은 새삼 들먹일 필요가 없다.

정부와 금융권의 압박공세는 그렇다 치고 양사가 구조조정이라는 국가적.시대적 요구에 부응해 대승적 차원의 결단을 내린 것은 평가를 받을 것이다.

반도체산업은 기술력확보가 촌각을 다투는 산업이다.

지난 9개월 동안의 통합소용돌이 속에 직원들이 동요하고 전문인력의 해외유출 등 산업기반 또한 적지 않게 멍이 들었다.

통합이 기정사실화된 지금 더 이상 시간을 끌어서는 안되며 양사는 고용보장을 포함, 남은 기술적 문제들을 하루속히 매듭지어야 한다.

현대와 LG반도체가 통합하면 삼성전자와 더불어 세계 메모리반도체산업은 한국이 수급조절과 가격결정을 주도하게 된다.

그러나 한국의 '반도체신화' 에는 어두운 '그늘' 도 적지 않다.

우리의 반도체산업은 본질적으로 메모리칩을 양산하는 D램산업이다.

시장점유율 35%를 자랑하지만 초기 개발투자가 많이 들고 수익성은 상대적으로 낮다.

이 D램시장은 세계반도체시장의 15%에 불과하다.

나머지 85%가 시스템IC제품이며 우리의 시장점유율은 1.6%에 머무르고 있다.

그나마 D램의 생산성은 미국 등에 크게 떨어지고, 후발국들은 전략산업으로 다투어 육성해 불황 때마다 생산과잉을 빚는 특성을 갖고 있다.

막대한 투자가 드는 '세계 최초 개발' 보다 수익성과 가치극대화에 눈을 돌려야 할 때다.

이런 시점에서 현대와 LG의 통합은 같은 제품의 중복개발투자를 절감하고 제품구성을 다양화.특화시키는 토대를 기약한다는 점에서 산업적 의의는 자못 크다.

갈등의 골을 메우고, 서로 다른 공정라인과 조직문화를 포용해 시너지를 살리는 일은 쉽지가 않다.

그러나 미래시장의 선점 (先占) 여부는 통합작업을 얼마나 신속하게 이루느냐에 달려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반도체 수요가 마침 상승국면을 타고 있는 호기 (好機) 를 놓쳐서는 안된다.

반도체통합의 사실상 타결로 9개업종에 걸친 5대그룹의 빅딜은 그 골격이 갖추어졌다.

삼성자동차도 이달말 인수계약 체결이 예정돼 있다.

모두가 마무리를 서둘러 더 이상의 자원과 노력.시간의 낭비를 막아야 한다.

빅딜은 이미 돌이킬 수가 없고 재벌개혁은 바야흐로 급류를 타고 있다.

'얼룩진 빅딜' 에 가슴앓이만 하다 '상처뿐인 영광' 을 자초해선 안된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