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이제 진영이 없어 어떡하니”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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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선데이, 디시전메이커를 위한 신문"

몇 년 전 고 장진영 주연의 ‘연애, 그 참을 수 없는 가벼움’(연애참)이란 영화를 봤다. 라스트 신에 이어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갈 때 앞자리에 앉은 여성 관객 한 명이 소리 내어 울기 시작했다. 그녀의 울음은 곧 ‘엉엉’ 하는 통곡으로 변했다. 울음은 바이러스처럼 주변 사람들에게로 퍼져갔다.

라스트 신은 ‘서러운 재회’ 장면이었다.
거칠지만 순정파인 룸살롱 아가씨 연아(장진영)는 약혼녀가 있는 영운(김승우 분)과 몰래 4년을 사귀었다.

“난 첩년도 좋고, 세컨드도 좋아. 그러니까 나 버리지만 마 영운씨?”
그러나 영운은 끝내 연아를 버린다. 버림받은 연아는 시골로 내려간다. 시골 유흥주점에서 일하던 연아에게 영운이 다시 찾아온다.

술집 앞에서 ‘오버이트’를 하고 있는 연아. 영운은 아직도 자신을 잊지 못하는, 초라하고 희망도 없는 연아를 안쓰럽게 바라본다. 연아가 “에이씨, 에이씨” 하며 자기를 버렸던 그를 외면했다가, 쳐다봤다가 고개를 푹 숙이는 것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사진)이었다. 마스카라로 얼룩진 얼굴로 한을 삭이는 장진영씨의 연기에 한동안 가슴이 콱 막히는 느낌을 받았었다. 장진영씨는 이 영화로 청룡영화제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당시 기자에게 뭉클한 감동을 줬던 장진영씨가 김영균씨와 사귄다는 것을 기자는 지난해에 알고 있었다. 지난주(9월 6일자 중앙SUNDAY) 김영균씨 인터뷰 기사에 밝힌 대로 그는 기자와 친구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히려 절친한 친구였기에, 그가 얼마나 고통스러울지 짐작이 갔기에, 과연 인터뷰를 추진하는 것이 적절한지 갈등이 작지 않았다.

기자의 결심을 굳히게 한 것은 여론이었다.
“사랑받지 못하는 것은 슬프다. 그러나 사랑할 수 없는 것은 더 슬프다”는 스페인의 철학자 MD 우나무노의 말을 받아들인다면, 우리 사회는 분명 ‘더 슬픈 사회’다. 사실 사랑 얘기는 널렸으나, 요즘처럼 메마른 세태에 진정성 있는 진짜 사랑 얘기는 드물다. 그래서인지 두 사람의 사랑은 모처럼 ‘울림’을 주고 있었다.

김씨에게 전화를 걸었을 때 그의 첫마디는 “나 이제 (진영이 없이) 어떡하니?”였다.

그런 김씨에게 “사랑이 없는 시대야. 세상에 네 얘기를 좀 들려줬으면 해” 하고 부탁했다.

인터뷰는 그렇게 시작됐다. 아니 인터뷰라기보단 친구끼리 편한 대화였다.
“정말 기도 많이 했거든? 진영이만 살려주면 나랑 안 살아도 좋다, 다른 사람이랑 사는 걸 봐도 좋고, 인연 끊어져도 좋다, 다만 진영이가 살 수 있게만 해달라고….”
김씨의 맺힌 한이 토해져 나오는 걸 느꼈다.

당시 기사에 옮기지 못한 내용 중 하나다.
“진영이가 어느 순간 자꾸 위가 쓰리다고 했어. 그래서 건강검진을 받게 했는데 병원에서 나한테 전화를 한 거야. 최소한 위암 3기 내지 4기라고. 병원으로 달려갔지. 병원에선 길어야 1년6개월 남았다고 했어.

그날 저녁때 진영이가 ‘자기야, 의사들이 이상해. 갑자기 집에 가라고 그랬어. 나 많이 안 좋아?’라고 묻는데 맨 정신으론 진영이를… 못 쳐다보겠더라고.”
이 말을 전하는 김씨나, 받아 적는 기자나 모두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인터뷰가 보도된 이후 주변 사람들에게 종종 이런 질문을 받았다. 감동적이긴 하지만 김씨가 좀 비현실적인 사람은 아니냐고.

죽을 사람과 결혼식을 올린 것이나, 죽음이 더욱 임박해 올 때 혼인신고까지 해버린 걸 두고 한 질문이다. 되묻고 싶다.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사랑하는 것과 현명해지는 것. 한 번에 두 가지를 동시에 갖는 것.’(미국 격언)

사랑이란 원래 현실적이어선 안 되는 것 아닌가. 그렇기에 그들의 혼인은 죽음을 초월한 영원한 결혼이 될 수 있었던 것이다.

장진영씨를 떠내보내면서 입은 김씨의 상처는 언제일 지는 모르지만 아물 긴 아물 것이다. 그 자리엔 ‘흉터’가 남게 될 것이다. 아끼는 후배 한 명이 흉터에 대해 이런 글귀를 남긴 적이 있다. 김씨에게 들려주고 싶다.

“흉터란 그런 것 아닌가. 더 이상 아픔을 느낄 수는 없지만, 분명히 아팠었던 나날들이 있었음을 기억하라는 표상.

더 이상 존재하지 않지만 ‘한때는 존재했었음을 일깨우기 위해 존재한다는 것’이 얼마나 허무한 일인가….”
정말 허무한 일인가?

강민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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