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버드 의대생의 메달 집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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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유리알처럼 반짝이는 수영장에 검은 점이 하나 떠 있다. 아테네 올림픽 미국 수구팀의 공격수 오마 아무르(30)다. 빠르게 물살을 가른 뒤 강한 슛을 날리는 모습에 주위에서 탄성이 절로 터져나왔다. 1m83㎝의 훤칠한 키에 탄탄한 근육질 몸매는 돌고래처럼 미끈했다.

캘리포니아에서 태어난 이집트인 2세인 아무르에겐 꿈이 두 가지다. 하나는 의사가 되는 것이고, 또 하나는 올림픽에서 메달을 따는 것이다. 미국에서 소수일 수밖에 없는 아랍계 출신인 그에게 성공을 보장해줄 '유일한 선택'이라고 그는 확신하고 있다.

그러나 아무르의 존재를 더 특별하게 만든 것은 따로 있다. 절망의 순간에서도 꿈을 잊지 않고 다시 일어선 패기와 끈기다. 2001년 동양무술인 당수와 유술에 심취해 상대편과 대련하던 중 아무르는 양쪽 무릎의 십자인대와 내측부 인대가 모두 끊어지는 큰 부상을 입었다. 대수술을 받은 뒤 의사로부터 '운동 금지'라는 처방을 받았다. 그러나 그는 길고 지루한 재활의 시간을 딛고 오뚝이처럼 다시 일어섰다.

의사의 꿈은 이미 절반쯤 이룬 상태다. 현재 하버드대 의대에 재학 중이기 때문이다. 2006년 졸업한다. 명문대 출신 스타가 즐비한 미국 대학의 스포츠계이지만 아무르는 그중에서도 특출난 존재다. UC 어바인 재학시절에는 생물학과 심리학을 복수전공하면서도 1994~96년 전미 장학생을 세차례나 받을 정도로 학업 성적이 탁월했다.

수구 실력도 물론 뛰어나다. 이집트에서 수구대표를 지낸 아버지의 권유로 13세때 처음 수구를 접했다. 학부 졸업반이던 97년 미국 수구 대표팀에 뽑힌 아무르는 2003년 팬암대회 브라질과의 결승전에서 결승골을 넣기도 했다. 그러나 의대 초년생 때 엄청난 양의 의대공부를 따라가느라 2000년 시드니 올림픽 대표팀 선발전에서는 탈락했다. 그는 다시 이를 악물었다. 이번 아테네 올림픽 대표에 뽑히기 위해 지난해 초 아예 휴학계를 낸 뒤 캘리포니아의 클럽팀에서 죽을 힘을 다해 훈련에 빠져들었다.

아무르가 가장 존경하는 인물은 인종 편견에 맞섰던 권투선수 무하마드 알리다. 하지만 그를 일으켜세우는 원동력은 자신에 대한 믿음이다. "할 수 있다는 '캔 두 스피릿(can do spirit)'이 나를 만든 힘이다. 하버드와 올림픽은 내 일생일대의 도전이자 기회"라고 그는 힘주어 말했다.

아테네=김종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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