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시평] 국가홍보와 영자신문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정부시책에 대한 국민의 지지율이 저조한 때면 정부의 공보기능에 대한 문제점들이 종종 지적되곤 한다.

최소한 국내 홍보기능에 대해서는 언론과 정치권에서 모두 관심을 가지고 대안을 모색한다.

그러나 실상 중요한 우리의 문화와 정책을 해외에 알리는 일에는 아직도 걸음마수준에 머물고 있다.

세계화시대에 효과적으로 대처하기 위해선이 문제에 대한 장기적 안목의 정책과 재정지원이 하루속히 마련돼야 한다.

우리나라가 국제통화기금 (IMF) 사태와 같은 위기를 맞아 국제적인 보도대상이 될 때마다 느끼는 점은 우리 정부나 국민의 뜻이 국제사회에 제대로 전달되지 못한다는 것이다.

외국신문.방송을 통해 부각되는 우리의 사정과 입장이 피상적이거나 오도된 경우가 허다하고 평상시 보도되는 우리 문화 또는 사회문제에 대한 기사들도 우리의 참모습을 전하는 데 많이 미흡하다는 것을 느낀다.

물론 이것은 언론이 일반적으로 갖는 시간과 지면의 제약, 그리고 대부분의 경우 한국어를 못하고 우리 문화를 소화하지 못한 외국기자들에 의해 취재되는 결과이기도 하다.

이러한 언론의 제약은 비단 한국뿐 아니라 다른 여러 나라들이 가진 공통적인 문제다.

이러한 문제의 해결을 위해 많은 나라들이 자국의 정책과 문화를 국제사회에 더 효과적으로 부각시키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는데 그중 가장 중요한 것이 영자신문 및 영어방송의 창달이다.

잘 만들어진 영자신문처럼 한 나라의 사정을 국제사회에 전할 수 있는 좋은 도구가 없다.

그 나라 주재 외교관.특파원과 상인들에게는 눈과 귀의 역할을 하며, 관광객.방문객들의 길잡이가 되고 모국어를 못하는 해외교포들에게는 모국을 잇는 다리이며 문화를 배울 수 있는 교과서가 된다.

영자신문은 또 세계공용어로 등장한 영어를 배우고 세계사정을 익혀야 하는 사람들과 외국을 상대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꼭 필요한 지침서의 역할을 한다.

외국에서 만들어지는 많은 어휘와 상품.기구명 등의 '원어' 를 영자신문을 통해 배울 수 있고 반대로 국내에서 일어나는 모든 중요한 일들을 영어로 표현하는 방법을 익힐 수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영자신문은 국내외 정치.경제 등 중요한 정부시책과 여론을 정확히 보도함으로써 국제언론에 반영될 수 있는 공보기능을 할 수 있다.그렇기 때문에 한국과 같은 비영어권 나라에서는 영어권보다 더 좋은 영자신문이 오히려 필요한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사정은 어떠한가.

코리아 타임즈와 코리아 헤럴드로 대표되는 한국의 영자신문은 정부와 정책수립자들의 관심 밖에서 지난 50년간 겨우 명맥을 유지해 왔을 뿐이다.

경영면으로만 본다면 벌써 폐간되었을 이 신문들이 그래도 창간이념과 직원들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오늘에 이르고 있다.

한국일보를 세운 장기영 (張基榮) 사주의 비전으로 1950년 창간된 코리아 타

임즈와 한국전쟁 후 국제홍보의 필요를 느낀 이승만 (李承晩) 정부가 1953년 출범시킨 코리아 리퍼블릭 (현 코리아 헤럴드) 은 그동안 국제사회에 한국을 심는 일에 노력해 왔다.

그러나 세계화의 소용돌이 속에서 신장된 우리의 국제적 위치를 대변하기엔 이들의 현 수준으로는 역부족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지명도와 역사를 가진 이 두 신문을 지원.강화해야 한다.

절대적으로 부족한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세금면제, 정부기구의 광고제공, 투자유치와 신문 다량구매 등의 특혜가 과감히 고려돼야 한다.

정부가 수십년간 정부기관지에 쏟아부은 관심과 재정지원을 영자신문으로 돌려야 할 것이다.

이렇게 마련된 기금으로 이 두 신문은 우수한 편집인.기자들을 국내외에서 채용해 알찬 신문을 만들어야 한다.

국제적 수준에 올라갈 때까지 국내외에 경험있고 실력있는 인사들로 구성된 편집고문위원회를 만들어 이들을 독려하는 방법도 강구될 수 있을 것이다.

또 다량 구입된 신문을 정부 부서는 물론 고등학교 이상의 교육기관에 배부하고 국내신문과 제휴해 구독료를 더 내지 않고 함께 배부하는 방법도 있다.

이탈리아의 유수 일간지 코리에레 델라 세라 (Corriere Della Sera) 는 영어판을 만들어 헤럴드 트리뷴을 구독하는 사람들에게 무료로 제공하고 있다.

그만큼 자기나라의 사정을 정확히 외국에 알릴 필요를 느끼고 있다는 증거다.

21세기 한국 해외홍보와 국제화의 첫걸음은 바로 잘 만들어진 영자신문을 확보하는 일에서부터 시작해야 할 것이다.

구삼열 유니세프 특별고문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