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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392. 아라리난장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7면

제8장 도둑

남원을 나선 두 사람이 구례 산동면으로 가겠다던 태호와 형식을 찾아 나선 것은 이튿날이었다. 남원을 떠나 구례에 당도해서 하동길로부터 연이어진 19번 도로를 북쪽으로 10㎞쯤 달려가니 산동면이 나타났다.

지리산 노고단 골짜기이면서 산수유 산지로 유명한 마을은 상위와 중위, 그리고 하위로 나뉘어 있었다. 위락시설이 밀집해 있는 곳은 하위였다. 그 골짜기에 그토록 호화스러운 대형 위락단지가 들어서 있으리라곤 미처 예상할 수 없었다.

시설뿐만 아니었다. 주말이 아닌데도 골짜기는 각처에서 모여든 차량과 관광객들로 붐비고 있었다.

더구나 중위 마을부터 상위 마을까지는 마침 만개한 노란 산수유 꽃으로 뒤덮여 서로를 시샘하듯 가쁜 숨을 고르고 있었다.

두 사람은 차에서 내리지 못하고 운전석에 나란히 앉아 골짜기의 장관을 한동안 넋을 빼고 바라보았다. 흥분을 감추지 못하는 승희를 남겨두고 태호를 찾아 나섰다. 사람들의 내왕이 빈번한 장소에 좌판을 폈음직한데, 사람들의 북새통 때문에 좀처럼 꼬투리를 잡을 수 없었다.

아무래도 마을 안쪽으로 가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그때 어디선가 태호의 맛보기 타령이 확성기를 통해 가느다랗게 들려왔다.

"산과 강의 곡성땅은, 돌실나이, 사과, 대추의 고장이라. 은어구이, 참게요리, 유과로 맛보고. 천하명당 구례땅은 산수유, 오이의 고장이라. 사삼, 토종꿀, 산채비빔밥, 은어회가 제격이라. 섬 같은 반도 고흥땅은 유자와 꽃게의 산지에 먹거리 흔전이라.

백일주, 부꾸미, 꽃게, 돔배젓, 능성어회, 진석화젓으로 맛보고. 서편제의 고장 보성땅은 방울토마토, 느타리버섯, 용문석의 고장이라. 전어회, 강하주, 양탕, 우족탕, 설록차로 맛을 보네. 신령바위 영암땅은 아시다시피 참빗과 무화과의 고장이라.

어란, 모치젓, 짱뚱어탕, 무화과 시루떡으로 맛보고. 화평한 마을 함평땅은 붓과 왕골돗자리 산지라. 엽삭젓, 병어젓, 유과, 선지 비빔밥으로 맛을 보네. 굴비의 고장 영광땅은 보리쌀과 대파의 산지라. 침 넘어가는 굴비백반, 고추장굴비, 해물전골로 맛보고. 밝디 밝은 고장 순천땅은 단감, 고들빼기, 나전칠기의 고장이라. 표고무침, 추어탕, 피라미탕으로 맛을 보네. 천년 고도 나주땅은 배와 멜론, 나주목물의 산지라. 가물치회, 오리탕, 곰탕, 통닭 찰흙구이 맛보았는지 모르겄네.

양쪽 고을 하나 되는 광양땅은 밤과 화훼의 고장이라. 재첩국, 밤쑥떡, 오리고기로 맛을 보네. 가사문학 담양땅은 죽세와 딸기의 고장이라. 죽순정과, 죽순회, 두부백반으로 맛보고. 인심 화순 화순땅은 영지버섯, 참외, 백운도예, 이조가구의 고장이라. 미꾸라지 숙회, 물천어 조림, 다슬기탕, 쏘가리탕으로 맛을 보네.

산 많고 땅 고운 장흥땅은 표고버섯, 딸기, 인삼의 산지라. 표고찜, 더덕생채, 은어죽, 바지락회로 맛보고. 실학의 고장 강진땅은 옹기, 고막, 해태의 고장이라. 토하젓, 꼴뚜기젓, 낙지볶음, 민물장어로 맛을 보네. 산천조화 해남땅은 참다래, 단감의 고장이라. 표고산적, 자외젓, 참게젓으로 맛보고. 선비정신 장성땅은 곶감, 단감, 한지의 고장이라. 고막꼬지, 용봉탕, 메기요기, 석박김치로 맛들이네.

섬 아닌 섬 완도땅은 건자반, 건미역, 톳멸치의 고장이라. 돔회와 전복죽, 용봉탕으로 맛보고. 민속 보고 진도땅은 구기자, 검정약쌀, 진돗개의 고장이라, 구기자밥, 해물뚝배기, 간재미회로 맛을 보네. 섬의 천국 신안땅은 젓갈과 맛김의 고장이라. 홍어회, 어란, 새우젓으로 맛보고. 충무정신 여수땅은 돌산갓의 산지라. 노래미탕, 밤젓, 갓김치, 서대회, 가오리찜으로 맛을 보네. 다도해 비경 여천군은 돌산갓의 고장이라. 멸치젓, 낙지볶음으로 맛보고.

승달의 고장 무인땅은 양파, 톰머리단감, 느타리버섯의 고장이라. 기절낙지, 짚불구이, 모치젓, 송어젓으로 맛을 보네. 추억 먹고 추억에 사는 목포땅은 행남자기의 고장이라. 대구뽈찜, 낙지연포, 삼합회, 송어젓, 모치젓 맛으로 사네. 군산 별미 준치회. 목포 별미 대구뽈찜, 고흥 별미 딱돔구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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