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위기에 선 초등학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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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초등교육은 국가의 미래를 약속하는 밑돌이다.

한국의 미래는 초등교육에 달려 있다고 말할 수도 있다.

우리의 교육체제 내에서 그간 가장 정상적으로 민족의 미래를 말없이 준비해 온 부문은 초등교육이었다.

중.고등학교는 항상 입시준비에 짓눌려 교육다운 교육이 부족했고, 대학교육은 학벌사회의 고질병 속에 실력주의를 멀리하며 값싼 낭만이나 자유를 내세우며 운동권 논리나 해외풍조에 휩쓸리면서 대학다운 운영을 쉽게 발견하기가 어려웠었다.

상대적 차이가 있겠지만 지난 현대사에 있어 말없이 진솔하게 교육다운 교육을 한 곳은 초등교육이었음이 분명하다.

그러나 현재 초등교단은 곳곳에서 허망하게 무너지고 있다.

초등교육에 몸바친 지난날을 후회하며 눈물로 한숨짓는 선생님들이 곳곳에 널려 있다.

왜 이런 비극의 사태가 발생했는가.

첫째, 초등교육의 본질을 모르는 사람들이 초등교육을 무모하게 다뤄 비극의 싹이 텄다.

모든 집의 아들.딸이 소중하듯이 그들을 가르치는 초등교육은 집단적 소중함의 일이다.

이 말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면 본인이 직접 자신의 아들.딸을 가르쳐보고 사람을 만들려고 시도해보면 선생님의 중요성을 절감하게 될 것이다.

최고의 전문직 가운데 전문직이 초등교육인데 아마추어가 상식적으로 교육정책을 다루면서 비극은 싹이 튼 것이다.

둘째, 현대의 교과과목을 모르는 사람들이 초등교육을 자의적으로 생각하면서 위기를 자초한 것이다.

쉽게 말하면 예전에는 해외에서 수입된 기존 지식을 전수시키며 사실상 지식 기능공을 만드는 것이 초등교육이었다.

그러나 오늘날의 초등 교과교육은 이론수출국으로서의 내일을 만들려는 교육이다.

예전에는 사과가 많이 나는 곳이나 인삼이 많이 나는 곳을 외우는 것이 초등교실의 모습이었다.

그와 같은 단순한 사실 (事實) 지식을 가르치고 산맥.강.평야를 외우는 시대는 지났다.

지가 (知價) 수준이 높은 고차원적 지식을 만드는 힘을 주고 고도의 창조력을 기르는 것이 오늘의 교육이다.

노벨경제학상을 탈 학생을 기르는 것이 오늘의 교육이지, 노벨상을 탄 외국학자의 이름을 외우는 시대는 지났다.

셋째로 현대의 초등교단이 무너지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선생님의 존엄함을 짓밟음에서 비롯된 것이다.

짓밟는다는 표현이 지나치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현장의 선생님들을 만나서 들어보면 이구동성으로 짓밟힌 심정을 말하며 사실상 눈물로 호소하고 있다.

그간 일부 지탄받을 교사도 있었으나 교직을 천직으로 알고 성스럽게 살아온 선생님이 수없이 있다는 현실을 망각한 가운데 오늘의 비극이 나온 것이다.

국가의 미래를 보증하는 최고의 자산인, 그 훌륭한 선생님 전체를 교단에 서는 것이 하루 한 시간이 괴롭다고 생각하게 만들었다면 그 책임은 누가 져야 할 것인가?

초등교사들이 곳곳에서 교단을 등지는 오늘을 목도하면서 어린 시절 고마웠던 선생님을 생각하는 추억도 사라져야 옳은가? 선생님들이 곳곳에서 고개를 떨구고 학부모 만나길 두려워하고 제자들 보기를 쑥스러워하는 현실을 외면해야 하는가? 이 위기를 어떻게 수습해야 옳은가.

첫째로 초등교육을 정치논리로 푸는 실수를 저지르지 말아야 하겠다.

교육자를 정치적 수단으로 보거나 무자비한 개혁논리로 다루는 한 초등교육이 무너지는 오늘날의 비극을 고칠 수는 없다.

둘째로 선생님을 선생님으로 모시는 격조높은 사회를 다시 찾아야 하겠다.

선생님들은 시정잡배가 아니다.

선생님들은 이름 그대로 선생님이다.

오늘날의 초등교단이 무너진 가장 큰 까닭은 선생님들의 인격을 짓밟은 데서 비롯됐다.

선생님들은 돈도 없고 권력도 없다.

그러나 그 선생님들이 가장 어렵고 존경스러운 존재가 될 때 우리의 미래가 있다.

지난 50여년의 세월 속에서 우리는 6.25전쟁도 겪었고 IMF국치도 겪었고 수많은 어려움도 있었다.

그러나 훌륭한 중견 선생님들이 교단을 등지며 교육계가 무너지고 있는 사실은 6.25전쟁.IMF국치보다 무서운 일이다.

선생님을 다시 찾고 선생님을 다시 받들어야 하겠다.

그리고 선생님들께 사회 전체가 진심으로 말하자. 아직도 선생님들을 존경하는 수많은 국민이 있고 스승을 기다리는 맑은 눈의 어린이가 선생님들이 교단을 지키시길 호소하고 있음을 말씀드리자.

안천 사울교육대 사회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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