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병욱칼럼] 언론은 누가 편했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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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지난주는 43회 신문주간이었다.

공교롭게도 신문의 날인 7일 아침 조간신문에는 김영삼 (金泳三) 전 대통령이 김대중 (金大中) 대통령을 독재자라고 비난하면서 그 이유의 하나로 현정부가 언론통제를 하고 있다고 주장한 내용이 일제히 보도됐다.

YS와 DJ는 우리나라 민주화운동의 대표적 지도자들이고 언론자유를 고창해 온 인물들이다.

이랬던 사람들 중 하나가 다른 한 사람을 상대로 언론통제니, 독재니 하는 말을 하고 있으니 기막힌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정치지도자들 중 언론자유에 대한 소신이 집권 전과 집권 후 바뀐 경우를 발견하기는 어렵지 않다.

그 대표적 예가 미국의 3대 대통령인 제퍼슨이다.

제퍼슨이 대통령이 되기 전에 했다는 "신문이 없는 정부와 정부가 없는 신문 중 하나를 택하라고 하면 나는 정부없는 신문을 택할 것" 이란 말은 언론자유를 얘기할 때면 으레 회자 (膾炙) 되는 유명한 구절이다.

우리 지도자들 중에도 이 구절을 인용한 사람은 적지 않다.

그러나 제퍼슨이 대통령이 되고 난 뒤 당시의 정론 (政論) 지들에 시달린 끝에 했다는 말을 아는 사람은 별로 없다.

그는 한 친지에게 보낸 편지에서 "요즘 신문에 씌어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신용할 수 없다.

신문을 전혀 본적이 없는 사람이 신문 독자보다 진실을 알고 있다.

잘못 아는 것으로 머리가 꽉 차 있는 사람보다는 아무 것도 모르는 사람이 진실에 가깝기 때문" 이라고 했다.

민주주의 전통이 짧은 우리나라의 언론자유 상황은 험난했다.

대통령의 언론관이 특히 큰 영향을 미쳤다.

국내 신문을 건강상 이유로 멀리 했던 이승만 (李承晩) 대통령시절 약간 나았던 언론자유 상황은 그 정권말기부터 나빠져 박정희 (朴正熙) 대통령의 3공 - 유신체제와 전두환 (全斗煥) 대통령의 5공정권을 거치면서 악화 일로를 걸었다.

특히 유신체제와 5공치하에서는 언론인 연행.해직, 보도지침 등을 통해 언론통제가 공공연히 자행됐다.

이런 상황은 87년 6.29선언을 거쳐 6공이 출범하면서 개선됐다.

신문 발행이 자유화되고 언론에 대한 간여도 거의 없어졌다.

'물태우' 로 대통령을 희화화 (戱畵化) 하거나 비판하는 기사에 대해서도 시비가 없었다.

다만 91년 수서사건때는 위기감을 느껴서인지 청와대와 안기부가 적극 나섰고, 그 보도에 앞장섰던 한 신생신문 편집국장이 취임 두달반만에 바뀌는 일도 벌어졌다.

그렇다면 민주화운동의 심벌이었던 YS와 DJ의 연속 집권 이후의 상황은 어떤가.

3년전 신문의 날 한국신문협회.편집인협회.기자협회는 언론자유 수호에 초점을 맞춰 지난 57년 제정했던 '신문윤리요강과 실천요강' 을 언론자유와 책임을 두 기둥으로 하는 내용으로 전면 개정했다.

언론자유 수호만을 내세우지 않아도 될 정도로 상황이 개선됐음을 인정한 것이다.

그런데 YS는 DJ에게 다시 언론을 통제하고 있다고 비난하고 있다.

내가 보기에 DJ와 YS는 모두 여론에 민감한 정치인이다.

언론의 비판적 보도에 민감하고 언론의 호의적 보도를 위해 부심하는 편이다.

자연히 언론기관에 우호적 인맥 구축에 관심이 크다.

여권매체로 불리는 중앙의 1개 신문.통신과 2개 방송의 정권초기 사장인사를 보면 YS정부에선 4명중 3명이 바뀌었는데 2명은 사내승진이고 1명은 외부인사를 기용했다.

현정부에서도 3명이 바뀌었는데 3명 모두 외부기용이었다.

여권매체 이외의 언론사에 대해서도 YS때는 세무사찰 등으로 영향을 미치려 했고, 현정부 출범후 지난 1년간은 편집.보도국장 같은 요직의 경우 호남출신들의 약진이 두드러졌다.

보도에 대한 직.간접적인 간여는 5공 이전과는 차원이 다르지만 YS때나 지금이나 간헐적으로 있어 왔다.

권력쪽에선 홍보.부탁 차원이라지만 언론쪽에선 그 선을 넘는 간섭.협박으로 느끼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 방식이 YS정권에선 투박했던 데 비해 지금은 집요한 면이 있다.

더구나 YS와 DJ 모두 탄압 속에서 민주화운동을 이끌어 왔기 때문인지 도덕성에 대한 자의식이 강하다.

권력이 도덕성을 독점하면 자기네와 정책에 대한 비판을 부도덕이나 악 (惡) 으로 몰아치는 경향을 나타내기 쉽다.

이는 시시비비와 비판을 생명으로 하는 언론의 입장에선 견디기 힘든 요소다.

그때나 지금이나 우리나라의 언론자유 상황이 선진국 수준과 거리가 있기는 매한가지다.

오십보 백보를 놓고 전직이 현직을 탓하기보다 그때 제대로 못했던 점이 반복되지 않도록 경험과 지혜를 나누는 자세가 아쉽다.

성병욱 본사 상임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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