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두달 쓸 건물에 40억 낭비할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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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내년 초 철거할 건물을 올해 40여억원을 들여 보수한다?

서울시가 시 재산인 서대문구홍은동 유진상가 건물을 놓고 한쪽에서는 보수공사를 진행하면서 또 다른 부서에서는 보수공사가 완공되는 시점부터 철거키로 계획해 막대한 시민 세금을 날릴 판이다.

시 건설국은 지난 1일 "홍제천의 하천생태계를 복원하기 위해 29년전 하천을 복개해 지은 유진상가 건물을 내년 초부터 철거키로 했다" 고 밝혔다.

그러나 이 건물은 시 건설안전관리본부가 사회복지시설로 활용하기 위해 지난 1월 말부터 40여억원의 예산을 책정해 배관 및 내장공사를 하던 중이었다.

시는 지난달 11일에는 이 건물을 '신지식 산업센터' 로 사용키로 방침을 다시 변경했다.

이에 따라 공사는 일시 중단됐으나 새로운 사용목적에 맞추기 위한 내부시설 재설계가 진행 중이다.

기존 보수공사는 지난달까지 이미 12%가 진척돼 시는 시공사인 (주) 신성에 9억9천여만원을 지급했다.

보수공사가 끝나자마자 건물을 헐어야 하는 이같은 어처구니 없는 상황은 건물철거 계획을 세운 시 건설국이 상가를 관리하고 있는 시 재산관리과와 아무런 사전협의 없이 결정했기 때문이다.

재산관리과 관계자는 "언론보도를 통해 상가 철거계획을 알게 됐다" 고 밝히고 "그렇지만 이미 10억원이 투입된 마당에 공사를 중단시킬 수는 없다" 고 말했다.

(주) 신성측은 "만약 공사가 중단되면 위약금을 청구 할 것" 이라고 밝히고 있으며 계획대로 공사가 끝나도 2개월 정도 사용하다 철거할 수밖에 없다.

이에 대해 건설국 관계자는 "철거계획을 확정할 당시 보수공사가 진행중인 것을 몰랐던 게 사실" 이라며 "시장결재까지 받은 사항이라 추진할 수밖에 없으며 관계 부서와 협의해 가능한 한 빨리 공사를 중단시키겠다" 고 설명했다.

이 과정에서 고건 (高建) 서울시장은 유진상가 철거계획과 활용 변경 계획을 열흘 간격으로 각각 결재한 것으로 알려졌다.

시는 지난 92년 내부순환로를 건설하면서 연건평 9천평의 5층짜리 주상복합건물인 유진상가의 4.5층부분으로 도로가 통과하게 되자 1백50여억원을 들여 2~5층을 매입했다.

철거가 끝난 94년 이후 2.3층은 활용되지 않은 채 지난 1월까지 방치돼 왔다.

이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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