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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수 햇살속 수출 먹구름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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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내수엔 서광, 수출전선에는 먹구름'. 내수와 수출의 희비가 엇갈리고 있다. 지난해 경제위기 극복의 효자노릇을 했던 수출은 내리막길을 걷고 있는 반면 극도로 위축됐던 내수는 미약하나마 회복의 징후들이 나타나고 있다.

위스키.자동차 소비는 물론 캠코드.골프용구 등 관련제품의 수입도 증가세로 돌아섰다. 하지만 본격적인 회복세라기보다는 일부 품목을 중심으로 한 '양극화' 현상의 하나란 지적도 만만찮고, 자칫하면 수출부진이 예상 외로 심각해 국제수지를 불안하게 만들지나 않을까 하는 우려도 적지 않다. 수출과 내수시장의 현황과 문제점 등을 집중 점검한다.

[비상걸린 수출]

호남석유화학 해외영업팀 김유수 과장은 수출상황판을 볼 때마다 가슴이 답답하다. 1~2월 수출은 지난해보다 18%나 줄었고, 만회에 안간힘을 다했지만 3월 실적은 더 어렵기 때문.

金과장은 "최대시장인 중국 등이 잔뜩 움츠린 데다 바이어들은 계속 값을 깎고 있으며, 각국의 규제까지 높아져 정말 힘들다" 면서 "지금까진 근근이 버티고 있지만 앞으로가 걱정" 이라고 말했다.

수출업계가 비상이다. 여건이 나아지기는커녕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고, 틈새시장 공략.원가절감 등으로 버텨 보려고 안간힘을 다하지만 좀처럼 개선조짐을 보이지 않는다.

3월의 경우 막판 밀어내기 덕에 하락세가 주춤해지긴 했지만 여전히 마이너스 성장 (-1.9%) 을 면치 못했고, 하락세는 앞으로도 계속될 전망이다.

◇ 비상 걸린 업계 = 섬유기계 수출업체인 C기계는 지난해 직원을 절반 이상 줄이면서도 1천3백만달러 수출을 달성했지만 올해는 자신을 잃었다.

조용철 과장은 "환가료 등 금융부담이 최소한 경쟁국보다 두배 이상 높다 보니 가격경쟁력이 약하고 그 결과 주문이 줄고 있다" 면서 "이런 식이 계속되면 공장가동을 줄여야 할 판" 이라고 말했다.

㈜대우 박창욱 경영기획팀장은 "환율하락으로 더 이상 납품을 하지 못할 정도로 채산성이 악화됐다고 호소하는 납품업체가 많은 데다, 올들어 은행에서 90일 이상짜리 외상 수출환어음은 할인을 꺼려 애로가 많다" 고 하소연했다.

브라질 등에 전자부품을 수출하는 우진하니벨 유동수 부장은 "현지의 구매력 감소와 바이어의 가격인하 요구로 올해는 수출이 절반 가까이 줄어들 전망" 이라고 말했다. 브라질에 월평균 1백만달러어치의 TV부품을 수출하던 한국전자는 아예 수출을 중단했다.

무역협회 조승제 무역지원실장은 "전년보다 80% 이상 오른 해상운임 등 물류비 상승과 원유값 상승 등도 무역수지 악화로 이어질 것" 이라고 내다봤다.

◇ 수출입 추이 = 산업자원부 추계에 따르면 3월중 수출은 1.9% 감소한 1백17억7천만달러 (통관기준) , 수입은 12.8% 늘어난 93억4천6백만달러를 기록해 월중 무역수지는 24억3천만달러 흑자로 나타났다. 이에 따라 1분기중 무역수지흑자는 49억달러로 늘어났다.

산자부 관계자는 "지난해 금 모금이 많았던 점을 고려하면 올해 수출은 소폭 늘어났다" 고 설명하면서도 "하지만 4월에도 수출이 1~2% 감소할 전망" 이라고 내다봤다.

품목별로는 반도체.자동차.액정표시장치 (LCD).정보통신 등은 상당한 회복세를 보이는 반면 철강.석유화학.조선.항공기 등은 고전이 예상된다는 것.

◇ 업계 건의 = 무역업계에선 무엇보다 '환율의 안정적 운용' 을 요구하고 있다. 또 수출무역 금융을 확대하고 경쟁국보다 높은 외환수수료 문제도 개선돼야 할 것으로 지적한다. 이밖에 ▶신용보증 확대 ▶해외시장 개척기금 재원 확충 ▶선박운임 안정화 등을 요구하고 있다.

김남중.홍병기 기자

[살아나는 내수]

IMF한파로 움츠러들었던 내수가 최근 '해빙' 조짐을 보이고 있다. 휘발유 소비가 IMF이전 수준으로 돌아갔고, 소주 판매가 줄어드는 대신 위스키 소비가 늘어나는가 하면 대형평수의 청약예금에 다시 돈이 몰리고 있다.

이같은 내수회복의 움직임에 힘입어 지난달에는 월간 수입액 (93억4천6백만달러) 이 97년 12월 (1백2억1천6백만달러) 이후 15개월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나들이가 잦아지고 차량 대수가 늘면서 휘발유 소비가 올들어 지난 1월 18.4% 늘어난 데 이어 2월에는 29.4%가 증가했다. 자동차는 현대가 올 1분기 중에 국내에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70.6%나 많은 12만1천9백여대를 판 것을 비롯, 대우 (58.4%).기아 (40.6%) 등도 높은 성장세를 보였다.

고급소비재의 수입증가는 더욱 눈에 띈다. 올부터 수입선다변화품목에서 해제된 일제 캠코더의 경우 올들어 3개월간의 수입실적이 지난해 전체 수입실적 (1백50만달러) 의 두배를 넘어선 3백68만달러를 기록했다.

지난 한달 동안 골프용구의 수입이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4백34.4% 늘어난 것을 비롯, 휴대폰 (3백88.7%).보석 및 귀금속 (1백2. 3%).화장품 (82.5%) 등의 수입도 큰 폭으로 증가했다.

경기 해빙은 술시장에도 변화를 몰고 왔다. 지난해 87만8천1백11상자 (한상자 = 750㎖×12병)가 출고돼 97년보다 29.1%나 급감했던 위스키가 올들어서는 2월 말까지 27만5천9백89상자가 팔려 전년 동기보다 10% 늘어났다.

반면 지난해 우울한 사회분위기 속에서 서민들이 자주 애용해 소비량이 2.9% 늘어나 술시장에서 유일하게 신장세를 지켰던 소주는 올들어 8.1%나 줄어들었다.

또 전용면적 30.9평이 넘는 아파트를 분양받을 수 있는 청약예금 가입자도 2월 말 현재 15만6천2백31계좌로 전월보다 7백47계좌가 늘어나 97년 12월 이후 처음 증가세로 돌아섰다.

이계영.홍병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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