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7일 오전 9시. 서울성북구보문동에서 홀로 사는 金월금 (75) 할머니는 뜻밖의 '손님' 들을 맞고 주름진 얼굴에 함박웃음을 지었다.
손님들은 이웃 노숙자 쉼터에 사는 실직 노숙자들. 이들이 할머니를 찾은 건 쓰러질 듯 낡은 5평짜리 집을 '봄단장' 해주기 위해서였다.
간단히 방문 이유를 설명한 뒤 이들은 가방에서 장비들을 꺼내들고 분주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실직 전 도배기술을 익혀놨던 宋모씨는 정성스레 새 벽지에 풀칠을 하고 까치발을 해가며 벽에 발랐다.
전기수선공이었던 李모씨는 전기 수선을 도맡았다.
안팎으로 물청소를 하고 장판도 새로 까는 등 집단장하기를 한나절. 金할머니가 조금이라도 도우려 하면 이들은 너털웃음으로 등을 떼밀고 집밖에서 쉬게 했다.
"이제껏 도움만 받고 지내왔잖아요. 이젠 공공근로와 같은 일거리도 생겼고 잠잘 곳도 마련됐으니 도움만 받고 살 순 없지요. " 쉼터 '아침을 여는 집' 에 사는 19명의 노숙자들이 4~5명씩 돌아가며 이웃의 독거 (獨居) 노인을 찾아가 돕는 자원봉사를 시작한 것은 이달 초. 자치회에서 스스로 선택한 '주말 보내기' 다.
"또 하나 좋은 일은 공공근로로 번 돈을 주말마다 술마시고 도박하며 탕진하는 일이 사라졌다는 거죠. 큰 돈은 아니지만 이젠 모두들 공공근로 임금의 절반은 꼭 저축하고 있습니다. "
자신들처럼 외로운 처지의 노인을 도우며 실직 후 처음으로 '뿌듯한' 주말을 보낸 노숙자들. 이들이 오랜만에 지어보인 미소는 아름다웠다.
서익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