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 인간 최후의 권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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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죽음을 앞둔 제갈공명은 주변사람들에게 "나이 50을 넘겼으면 요절이라 할 수 없다 (五十不稱夭)" 고 위로했다.

환갑을 맞으면 세상 살 만큼 살았다는 마음으로 잔치를 벌이고 70은 '예부터 드문 나이 (古稀)' 라 했다.

그런데 지금은 70세에도 일을 계속하는 사람들이 있고 환갑잔치를 쑥스러워하는 사람들이 많다.

의학의 발달이 평균수명을 늘려 온 결과다.

앞으로 평균수명은 더욱 급격히 늘어날 전망이다.

유전공학의 발달로 세포복제가 가능하게 되면 노쇠현상 자체가 퇴치된다.

지금 시야에 들어온 성과만 활용해도 2백세는 무난한 세상이 될 것이라 한다.

죽음의 공포는 인간의 제일 큰 두려움이다.

그런데 몇십년 뒤의 인간은 살인이나 사고 등 인간행위 외에는 거의 죽음의 위협을 받지 않게 된다고 한다.

그러면 인간은 행복해질까. 굶주린 사람은 독이 든 음식이라도 마다않고 배부른 사람은 진수성찬이라도 거들떠보지 않듯, 죽음이 찾아와 주지 않으면 사람이 죽음을 두려워하기보다 그리워하게 될 것이라고 말하는 이도 있다.

실제로 생활이 편안한 선진국일수록 자살률이 높은 것도 그런 징조일 수 있다.

안락사 문제가 갈수록 심각해지는 것도 그런 사정 때문이다.

뇌사상태를 연장하기 위해 아무리 비용이 들고 무의미하게 생각돼도 생명연장조치를 중단하면 살인죄가 된다.

불치병에 걸려 인생에 고통밖에 남지 않은 사람이라도 그 자살을 도와주면 자살방조죄가 된다.

본인의 고통이나 의미에 관계없이 인간의 생명을 절대적으로 존중하던 시대에 만들어진 법체계가 현대세계와 미래세계에도 적합한 것일지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지난 주 미국에선 안락사와 관련된 두 건의 법적 조치가 있었다.

버지니아주의 미셸 핀 여사는 지난 가을 주 (州) 정부와의 법정싸움에서 승소, 뇌사상태의 남편에게서 연명장치를 제거할 수 있었다.

핀 여사는 주 정부에 법정비용 청구소송을 냈는데, 이에 맞서 버티던 길모어 지사가 끝내 백기를 들었다.

다른 한편에선 인간의 '죽을 권리' 를 주장하며 지금까지 1백여명의 안락사를 도와줬다고 공언해 온 '죽음의 의사' 케보키언씨가 미시간 주의 한 법정에서 2급살인죄로 유죄판결을 받았다.

소생의 희망이 없는 뇌사의 운명을 맞은 개인에게는 이 권리가 인정되고, 소신에 따라 텔레비전에까지 자기 유죄의 증거물을 공개한 의사는 처단받는 것이 지금의 상황이다.

기아와 전쟁으로 죽음의 위협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있는 세상의 한쪽에서 벌써 벌어지고 있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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