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하는 색 마음대로' 花色연구 급진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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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빨강 = 사랑. 노랑 = 기쁨. 하양 = 존경. 흔히들 장미꽃 색의 상징을 이렇게 말한다.

그렇다면 '파랑' 은 어떨까. 아마 그 차가운 색감에서 '배반 (背反)' 을 느낄 수도 있으리라. 그러나 실제 '배반의 장미' 는 존재하지 않는다. 장미는 원래부터 파란 꽃 색을 내는 유전자가 없기 때문이다.

파란 장미. 자연은 그 존재를 부인해왔지만, 유전공학자들에게는 더 이상 상상 속의 장미가 아니다.

"파란색을 내는 유전자를 알고 있다. 다소 시행착오는 있겠지만 파란 장미는 이미 식물 유전학자들의 손안에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 생명공학연구소 민병환 (閔炳桓) 박사는 확신에 차 있다.

그는 국내 학자 중 직접 꽃 색깔을 바꿔본 경험이 있는 유일한 사람이다. 그가 손댄 꽃은 카네이션.페츄니아.과꽃 등 너덧 가지로 페츄니아는 그의 손에 의해 흰색에서 주황색으로 변하기도 했다.

모두 90년대 초.중반 독일 막스플랑크 식물육종학연구소 근무 시절의 얘기다. 이 연구소는 87년 세계 최초로 옥수수 유전자를 넣어 주황색의 페츄니아를 만들어 선보인 적이 있는 꽃 색깔 변화연구의 메카 같은 곳. 이전까지 '페츄니아에 주황색' 은 어불성설. 주황색을 내는 색소 유전자의 결함 때문이었다.

"세상의 꽃들은 크게 세 가지 기본 색깔, 즉 주황.빨강.파랑 중 한 계통의 색을 띈다. 흰 꽃이나 노란 색은 이들 색깔을 '지시' 하는 유전자 중 돌연변이가 생길 때 나온다. " 그러나 우연일까. 인기있는 꽃치고 파란 계통이 드물다.

세상에서 가장 많이 팔린다는 장미.카네이션.국화 모두 파란색 결핍증이다.

閔박사는 "바로 이런 점 때문에 학자들이 파란 색에 집중도전하고 있다" 고 설명한다.

호주의 플로리진사 (社) 장미와 카네이션 꽃 색 바꾸기에 매달려있고, 일본 산토리는 장미에 집중하고 있다. 국내 연구팀은 이들과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는데 빠르면 3년 후쯤이면 파란 장미가 첫 선을 보일 것 같다.

유럽쪽은 화색 (和色) 연구의 발상지임에도 유전공학에 대한 거부감 등의 이유로 상용 연구는 오히려 지지부진한 실정이다.

파란 장미 만들기의 출발점은 파란색 유전자를 얻는 것. 생명공학연구소팀은 도라지로부터 파란 유전자를 확보했다. 다음은 이 유전자를 장미에 이식하는 것. 연구팀을 지휘하는 유장열 (劉長烈) 박사는 "유전자 이식은 쉽지 않은 작업으로 우리는 지금 여기에 매달려 있다" 고 말한다.

파란 국화를 시도하는 곳도 있다. 상명대 원예과학과팀은 벌써 3년 넘게 '한 송이 (파란) 국화 꽃' 을 피우느라 여념이 없다.

지난해에는 실험적으로 파란색 유전자를 담배 꽃에 이식해보기도 했다. 그래서 보라색 담배 꽃을 얻기도 했는데 아직 확신이 들지 않은 상태. 국화 대신 담배로 실험하는 것은 담배의 유전자 구조가 식물 중에서는 가장 널리 알려져 있기 때문. 담배 실험이 끝난 뒤 국화에도 유전자를 이식했는데 결과는 가을쯤이라야 알 것 같다.

수원의 원예연구소는 나리 (백합류)에 정성을 들이고 있다. 이 연구소는 먼저 색깔을 완전히 변화시키기 보다는 농도를 조절하는 쪽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한 연구자는 "붉은 계통 유전자를 늘이거나 줄이는 방식으로 암적색이나 밝은 적색, 파스텔 톤의 백합을 만들 작정" 이라고 말했다.

유전자 조작을 통한 꽃 색깔 바꾸기는 국내에서는 이제 막 피어나는 연구분야. 전문가들은 "그러나 동물 복제 등과는 달리 윤리적인 문제가 거의 없고, 고부가가치여서 전망이 밝다" 고 말한다.

지금까지는 꽃 색을 바꾸는 방법으로는 교배가 거의 유일한 수단이었다. 그러나 이 경우 새로운 색을 '창조' 할 수 없을 뿐 더러 색 외에 다른 유전자까지 변하는 단점이 있다.

또 유전자 조작은 수년 내에 가능하지만 교배를 통해 새로운 품종의 꽃을 얻으려면 보통 10년 안팎의 오랜 시간이 걸리는 단점이 있다.

[궁금증 문답풀이]

- 꽃 색은 어떻게 결정되나.

"꽃 색은 식물이 나름대로 환경에 적응한 것으로 유전자에 따라 색이 정해진다. 꽃 색은 아주 다양한 것 같지만 모두 곤충의 눈에 보일 수 있다는 점에서 공통이다. 곤충의 눈에 띄어야 수정에 유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떤 색이든 곤충에게는 모두 흑백으로 보인다. "

- 꽃의 기능은.

"흔히 꽃을 '내용은 없고 겉보기만 좋은 것' 에 비유하는데 사실과 동떨어진 것이다. 꽃의 색소물질 (플라보노이드) 은 수정 외에도 유해한 자외선으로부터 식물체를 보호하는 역할을 한다. 꽃잎이 자외선을 흡수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꽃에는 항생제 역할을 하는 물질이 있어 해충의 공격을 막아낸다. 뿐만 아니라 항암성분까지 존재하는 등 꽃은 식물 중 가장 중요한 기관중 하나다. "

- 꽃 색이 바뀌면 향기나 모양도 변하는가.

"향기를 정하는 유전자와 색소 유전자는 전혀 관계가 없다. 따라서 유전적으로 꽃 색만 바뀐다면 향은 변하지 않는다. 단 교배를 할 경우 변화가 있을 수도 있다. 모양도 마찬가지다.

- 꽃이 색을 낼 수도 있다는데.

"꽃 뿐만 아니라 잎사귀 등도 야광을 낼 수 있다. 실제 일본에서는 담배나무에 반딧불이의 야광 유전자를 집어 넣어 깜깜한 밤중에 빛을 내도록 바꾼 적도 있다. "

- 꽃은 쉽게 시드는 게 단점인데 오래가는 꽃을 만들 수는 없나.

"가능하다. 꽃은 자체적으로 발산하는 에틸렌이라는 물질때문에 시드는데 이와 관련한 유전자를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게 하면 가능하다. 실제 이런 방법으로 카네이션의 개화시기를 열흘 가량 연장시킨 사례도 있다. 그러나 이런 방법은 돈이 많이 들어 아직 상용화는 쉽지 않은 실정이다. "

- 꽃 유전자를 마음대로 조작하면 인간에게 피해는 없나.

"꽃은 일단 먹는 것이 아니므로 채소와는 다르다. 또 설령 유전자가 야생 식물과 교잡을 통해 옮겨지더라도 색깔 변화에 머무를 것이므로 큰 문제는 없다고 본다. "

김창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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