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공항…간판뿐인 국제공항 걸핏하면 아찔비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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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연간 6만대에 가까운 항공기가 뜨고 내리는 제주국제공항. 하루 평균 1백70편의 비행기가 운항하는 제주공항은 연간 이용객이 9백60만명으로 김포공항에 이어 국내에서 두번째로 큰 공항이다.

그러나 해안에 인접한 탓에 돌풍이 잦아 회항.결항이 한해 2천90편에 이르고 사고위험이 크지만 저고도돌풍경보장치 등 안전시설은 아예 없거나 턱없이 부족, 항공기의 이착륙은 항상 불안하기 짝이 없다.

게다가 여객청사는 비좁아 주말이나 관광철이면 '저잣거리' 를 방불케 한다.

◇ 국지돌풍 관측장비가 없다 = 지난 18일 제주공항에서 벌어진 상황은 승객은 물론 항공사와 공항 관계자의 간담을 서늘하게 했다.

2백71명의 승객.승무원을 태운 대한항공 1213편은 착륙바퀴를 내린 뒤 활주로에 접근중이었다.

하지만 활주로의 예상 착지지점보다 60여m 앞 잔디밭에 바퀴가 닿은 뒤 40m 가량 미끄러지다 가까스로 급상승, 출발지인 광주공항으로 되돌아갔다.

대한항공측은 회항 이유를 국지돌풍 (wind shear) 이라고 밝혔다.

국지돌풍의 위험성은 94년 8월에도 확인됐다.

착륙하던 대한항공 2033편이 강풍에 밀려 활주로를 이탈, 기체가 폭발했으나 승객.승무원 1백60명은 재빨리 대피해 인명 피해는 없었다.

이처럼 국지돌풍은 제주공항이 42년 일본 육군 비행장으로 개항한 이후부터 줄곧 지적돼온 제주공항의 가장 큰 문제점이다.

그러나 제주공항을 관리하는 한국공항공단 제주지사측은 국지돌풍을 관측하기 위한 저고도돌풍경보장치 (LLWAS) 도입을 95년부터 검토하기 시작, 예산부족으로 어려움을 겪다 겨우 지난해말 사업자를 확정했다.

이에 따라 LLWAS 설치공사는 다음달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돼 올해말 완공될 예정이다.

다행히 인명피해가 없었던 대한항공 1213편의 사고로 LLWAS 사업 추진에 '가속도' 가 붙을 전망이다.

LLWAS는 제주공항처럼 해안에 접해 돌풍이 잦은 공항에는 필수장비라는 게 전문가들의 한결같은 얘기다.

미국의 공항은 1백%가 이 장비를 갖추고 있다.

◇ 착륙대가 국제규정에 미달한다 = 착륙대는 활주로 양옆의 개방된 여유공간을 말한다.

국제민항기구 (ICAO) 규정상 활주로 양옆으로 너비 1백50m의 개방된 여유 공간이 확보돼야 하지만 제주공항 동.서 활주로의 북쪽 구간은 절반인 75m에 불과하다.

항공기 사고가 발생할 경우 비상 탈출로 역할을 하는 이착륙대가 82년 활주로가 개설된 뒤 17년이 지나도록 규정에 맞추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4백20억원이라는 막대한 예산이 들어간다는 이유로 건교부의 예산지원이 이뤄지지 않아 방치상태에 놓여 있다고 제주공항 관계자는 말했다.

◇ 공중 충돌사고에 노출돼 있다 = 매시간 많을 때는 20여편의 항공기가 제주공항 상공으로 날아들지만 사고를 막을 레이더공중충돌경보장치 (CNF)가 없다.

96년 한해만도 공중충돌 직전의 니어미스 (near miss) 사고가 제주공항 상공에서 세차례나 발생했다고 한국공항공단 제주지사측은 밝혔다.

CNF는 3천피트 (2.7㎞) 상공에서 공항상공 수평거리 5㎞ 이내에 진입하는 모든 항공기의 고도와 근접상황을 파악, 항공기의 공중충돌 가능성을 사전에 감시하는 첨단경보장치.

이 장치의 필요성은 지난해 3월 건교부 항공국이 제주공항 안전관리 실태점검에서도 지적됐다.

그러나 3백47만달러에 이르는 예산이 없어 엄두를 못내고 있는 것이다.

◇ 관제사각 (死角) 현상도 심각하다 = 관제탑에서 활주로내 항공기를 놓치는 관제사각현상도 해결해야할 시급한 과제다.

97년부터 화물신청사 신축공사에 들어가면서 남.북 활주로의 활주로 1백20m, 착륙대 2백80m, 유도로 3백40m 구간이 각각 관제탑에서 볼 수 없는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또 동.서 활주로의 경우는 구릉지대에 가려 유도로 부근 6백m구간이 관제사각지대다.

사각지대 구간에 대해 폐쇄회로 (CCTV) 를 통해 관제에 나서고 있지만 눈.비등 기상악천후에는 한마디로 '장님 코끼리 만지는 격' 이 될 수 밖에 없다고 여객기 조종사들은 전했다.

현재 41m인 관제탑 높이를 69.5m 높이로 신축하는 것이 유일한 해결책인 데 96년 설계를 끝냈지만 59억원의 예산이 없어 착공을 못하고 있다.

제주 = 양성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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