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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출구전략 국제 공조 주장…‘조기 긴축’목소리 누그러질 듯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2면

주요 20개국(G20) 재무장관들과 중앙은행 총재들이 5일 경제 회복이 확고해질 때까지 확장적 통화·재정 정책을 유지하기로 합의했다. 이들은 특히 금리 인상이나 재정 긴축 같은 ‘출구전략(exit strategy)’의 시행은 시기상조라는 데 인식을 같이했다. 또 출구전략을 추진할 때는 ‘국제 공조’를 통해 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세계 경제가 회복 조짐을 보이면서 독일·프랑스 등을 중심으로 제기돼온 출구전략 조기 시행론은 일단 수면 아래로 가라앉게 됐다. 1930년대 대공황과 90년대 일본의 장기불황 때 성급한 출구정책이 경제를 더 큰 침체에 빠뜨렸다는 점과 여전히 세계 경제에 불확실성이 많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린지 태너 호주 재무장관은 “100m를 전력 질주해 왔는데 도착해 보니 마라톤을 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G20 재무장관 회의의 결론에 따라 한국의 출구전략에도 큰 그림이 잡히게 됐다. 우선 출구전략 시행 시점은 내년으로 늦춰질 전망이다. 무엇보다 한국 정부가 앞장서 출구전략의 국제 공조를 주장했기 때문이다.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은 ‘출구전략에 관한 한국 제안’을 통해 “출구전략을 국제 공조의 틀 안에서 논의하자”고 말했다.

출구전략은 위기 시에 쓴 비상조치를 되돌리는 것인 만큼 회복이 빠른 국가일수록 빨리 시행할 수 있는 여건을 맞게 된다. 한국이 이에 해당한다. 이미 이성태 한국은행 총재는 8월 금융통화위원회 직후 “3분기 몇 달간의 경기 상황을 면밀히 살피겠다”며 경기 회복이 보다 뚜렷해질 경우 금리를 인상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놨다.

하지만 한국이 출구전략의 국제 공조 원칙을 주도한 만큼 경제 형편이 나아졌다고 금리 인상을 치고 나가기는 어렵게 됐다. 정부의 종전 입장도 “출구전략은 너무 빠른 것보다는 늦은 게 낫다”는 쪽이었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개별 국가가 금리 인상 경쟁을 벌이면 시중 자금을 빨아들여 국제 경제의 흐름을 왜곡시킬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재정 확대도 더 힘을 받게 됐다. 윤 장관은 “세계 경제 회복이 미흡한 상황에서 개별 국가가 정책 기조를 긴축적인 방향으로 선회할 경우 세계 경기 회복을 지연시킬 가능성이 있고, 국가 간 회복 속도의 차이를 더 확대시킬 수 있다”고 말했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재정 건전성을 높이기 위해 재정 확대 정책을 중단해야 한다는 정치권 일각의 공세를 막아낼 수 있는 명분이 생겼다”며 “내년 예산 규모를 올해 본예산보다 늘리고 감세 기조를 유지하겠다”고 말했다. 총지출 기준으로 2009년 본예산(284조5000억원)과 추경예산(301조8000억원) 사이에서 내년 예산 규모를 구상 중이라는 얘기다.

대신 금리 인상과 재정 긴축이라는 큰 출구전략 이외의 작은 전략들에 대해선 속도를 높일 전망이다. 한국은행의 은행채 매입 조치가 11월 종료되고, 시중은행에 공급했던 달러자금도 속속 회수되고 있다. 중소기업에 대한 신용보증 규모도 상반기에 비해 줄어든다. 정부는 또 노후 차량 교체 시 세제 지원 혜택을 올 연말까지만 주고, 희망근로 규모도 대폭 줄일 방침이다.

이상렬·김원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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