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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 명의 감독이 그려낸 ‘돈 돈 돈 대한민국’ 풍속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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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8면

권종관 감독의 ‘동전 모으는 소년’. 아이돌 그룹 ‘씽’의 기파랑이 주인공 소년 역에 전격 발탁됐다. 사춘기 로맨스물의 형식을 빌려 돈에 물든 세태를 풍자한다.


“돈 돈 돈, 돈에 돈 돈, 악마의 금전~”

1980년대를 풍미한 운동가요의 가사다. 돈에 대한 노골적인 적개심이 느껴진다. 하지만 돈 없이 살 수는 없는 법. 그래서 오히려 ‘갑갑증’이 더 클지도 모른다. 있으면 있는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언제나 골칫덩이다.

21세기 초, 소위 ‘88만원 세대’로 호명되는 젊은 감독들의 눈에 비친 ‘돈’은 무엇일까. 옴니버스 영화 ‘황금시대’는 그 대답이 될만하다. 올 5월 전주국제영화제 10주년 기념 개막작으로 선보여 호평 받은 작품이다. 윤성호·김성호·권종관·이송희일·양해훈·김영남 등 젊은 감독 10명이 모였다.

‘황금시대’는 속물주의와 배금주의가 지배하는 ‘돈 사회’의 초상을 발랄하고 경쾌하게 그린다. 공포·멜로·시트콤 등 장르도 다양하다. 무거운 상념과 정색한 비판 대신 다양한 장르와 화법으로, 돈에 웃고 돈에 울며 돈에 살고 돈에 죽는 세태를 스케치했다.

때론 실소 넘치고, 때론 섬뜩하다. 오달수·박원상·임원희·소유진·조은지 등 충무로 스타도 가세해 한층 깊이를 더했다. 영화에 나타난 우리시대 돈의 풍속도를 한번 들여다보면….

◆재기발랄 감독들의 머니쇼!=가장 눈길을 끄는 영화는 ‘은하해방전선’ 윤성호 감독의 ‘신자유청년’이다. 52번 연속 로또 1위에 당첨돼 ‘팔자 핀’ 고시원 총무(임원희)의 이야기다.

일종의 인터뷰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진행된다. 물론 그는 흥청망청 대박 행진이 끝난 뒤 쪽박을 차고 추레한 고시원 총무로 되돌아온다. 시사평론가 진중권이 그 성공담의 사회문화적 파장을 분석하는 장광설을 늘어놓는 등 감독 특유의 지적인 코믹감각이 돋보인다.

‘여고괴담4’ 최익환 감독의 ‘유연 live’는 사기 당해 전 재산을 날린 두 친구가 자신들의 억울함을 호소하기 위해 인터넷 방송으로 유언을 하고 자살하려는 소동을 담았다. 물론 실수 연발인 두 친구는 자살에도 실패하고, 아무 일도 없다는 듯 일상으로 돌아간다. 실수로 자살에도 실패하는 지질함이 오히려 삶의 원천이 된다는 역설이 돋보인다. 실제로도 절친한 구교환·이민웅 콤비의 코믹하고 어수룩한 연기 호흡이 좋다.

권종관 감독의 ‘동전 모으는 소년’은 사춘기 로맨스물이다. 짝사랑 소녀와의 첫 데이트를 꿈꾸던 소년이 진실을 맞닥뜨린 순간, 정성껏 모아온 동전은 의외의 무기로 돌변한다.

◆돈으로 쓴 사회학 보고서=이송희일 감독은 ‘불안’에서 돈이 중산층 가정을 파괴하는 순간을 정밀하게 포착한다. 주식으로 1억 원을 날린 남편과 나들이를 나온 아내. 그러나 남편의 모든 것을 의심하며 격한 히스테리 상태에 빠진다.

남다정 감독의 ‘담뱃값’은 몇 푼 안 되는 담뱃값이 돌고 돌아, 어떤 값을 치르게 하는지를 예리하게 잡아낸 수작이다.

노숙자·여중생·여기자라는 권력관계 속에서 돌고 도는 돈의 순환, 약자가 가해자로 변화하는 순간 등을 짧은 이야기에 잘 녹여냈다. 공포물 ‘톱’의 김은경 감독과 함께 여성감독의 힘있는 연출력을 잘 보여준다.

◆감독들이 말하는 ‘돈’=1일 기자간담회에서 10인의 감독들은 영화만큼이나 인상적이고 솔직한, 돈에 대한 단상을 밝혔다. 조금 과장해 우리 사회 ‘화폐생활백서’다.

“돈은 돌고 돌아서 돈. 이게 잘 돌아야 하는데 한 곳에 머물러서 문제.”(양해훈)

“돌고 돌아서 돈인데, 문제는 내게는 안 돌아온다는 것.”(이송희일)

“돈은 없어도 문제, 많아도 문제. 그러나 이 영화를 찍으면서 새삼 제작비는 많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김은경)

“돈은 와이프다. 와이프가 자꾸 돈을 벌어오라는 눈빛을 보내서. 와이프를 보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것이기 돈이기 때문에.”(권종관)

“스태프들에게 ‘담뱃값’ 이상 줄 수 있는 환경에서 영화를 만들고 싶다.”(남다정)

“돈에 대한 영화를 찍으면서 스태프들에게 평생 빚을 진 기분이다. ‘해운대’가 관객 1000만을 돌파했는데 ‘황금시대’는 3만 관객을 돌파하면 감독들에게 100만원을 줄 수 있다고 한다. 그 돈 받으면 스태프들과 진하게 회식하고 싶다.”(김성호)

‘황금시대’는 10일 서울 광화문 시네큐브, CGV 압구정, 메가박스 동대문, 시네마 상상마당 등 20여 개 극장에서 개봉한다. 15세 이상 관람가.

양성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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