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중진공 임직원 4억 모아 벤처투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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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중소기업진흥공단 임직원들은 최근 '기금 모으기' 를 시작했다. 임원에서부터 말단 사원에 이르기까지 40여명이 각각 5백만원에서 2천만원씩 냈고, 총 모금액은 4억4천5백만원에 달했다.

이들은 이 돈으로 이달말 소재 (素材) 전문 벤처기업인 '파이오니아메탈' (경기도파주시) 의 증자 (자본금 16억3천7백만원→20억원)에 참여할 예정이다. 이 모금을 주도한 기획조정실 이경열 부장은 "유망 벤처를 키우고 돈도 벌기 위해 뜻을 모았다" 고 말했다.

중소업체나 벤처기업 지원을 전문적으로 대행하는 공공기관인 중진공 (이사장 박삼규) 임직원들이 개인 돈을 모아 첨단 벤처기업에 대한 엔젤 (투자클럽) 을 결성해 화제다.

이들이 투자 대상으로 잡은 파이오니아메탈은 직원수 42명, 연 매출 60억원에 불과한 소기업. 하지만 벨기에.미국.일본에 이어 97년초 세계 네번째로 극세 (極細) 금속섬유를 개발해 올 하반기 양산체제에 들어갈 예정이다.

중진공 직원들이 엔젤투자자로 나서기로 한 것은 이 회사의 '장래성' 이 아깝다고 판단한 때문. 이 회사는 시설 확장을 위한 자금 마련에 나섰지만 형편이 여의치 않았다.

지난 88년 창업 이후 몇차례 중진공 자금 신세를 져 더 이상 지원이 곤란한데다 일반인에 대한 인지도는 상대적으로 낮아 마땅한 투자자가 나서지 않았다.

그러자 평소 이 회사의 가능성을 눈여겨 본 중진공 직원들이 하나둘씩 투자에 참여하겠다고 나선 것. 최길수 벤처창업팀장은 "자그마한 회사인데도 전임연구원이 12명이나 될 정도로 연구.개발 (R&D) 의욕으로 똘똘 뭉친 데다 기술축적 수준이 놀라워 사내 투자자를 모았다" 고 말했다.

처음엔 심드렁한 반응을 보이던 직원들도 지난 13일 석창환 (46) 사장의 사업설명회를 들은 다음에는 적극적 태도로 돌아섰다.

지난해 12월 결혼한 관리실 박정근 대리 (33) 는 "신혼살림집 가구 구입비를 아껴 모은 5백만원을 투자하기로 했다" 고 말했다.

박금일 이사도 "대학원에 다니는 아들이 탄 장학금 5백만원을 맡아놓았었는데 좋은 일에 쓸 기회라는 생각이 들어 투자를 결심했다" 고 말했다.

주당 가격도 액면가 (5천원) 의 두배인 1만원. 파이오니아메탈은 빠르면 내년말 코스닥 등록을 계획하고 있다. 희망대로 되면 중진공 직원들은 짭짤한 수익을 올릴 수도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유망 중소.벤처기업 발굴.지원이 본업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이들이 이런 결정을 내린 것에 대해 한 관계자는 "그만큼 이 회사의 성장성을 믿기 때문" 이라고 설명했다.

이 회사가 가진 극세섬유 기술은 머리카락 굵기 (50μ.1천분의50㎜) 의 3분의1도 안되는 15μ의 금속섬유 제조비법으로, 지난 94년부터 모스크바 항공대와 국제적 산학협동 끝에 올린 개가.

특수금속 필터나 전자파 차폐재료.가스연소장치용 촉매 등에 쓰이는 21세기 첨단소재로, 이 분야 세계 최대 메이커인 벨기에 베카르트 관계자들도 감탄했다는 후문.

한편 石사장은 "영업비밀 보호가 중요한 벤처기업 특성상 기술을 평가할 줄 알고 공신력이 있는 공공기관 종사자들이 주주가 된 것을 다행스럽게 생각한다" 고 말했다.

石사장은 대학 (전기공학) 졸업후 고층빌딩 설계회사를 10년간 다니다 36세에 늦깎이로 창업, 전기통신용 관로 (管路) 재료 등 비인기 업종인 소재 분야 외길을 걸어왔다. 이익금을 몽땅 R&D에 쏟아붓는 기업으로도 소문나 있다.

홍승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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