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급공사 전관예우] 어떻게 활약하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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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전관 (前官) 들의 활약, 특히 엔지니어링업계와 부처 사이에서의 '링커' 역할은 건설계에선 이미 구문 (舊聞) 이다.

"모셔온 분이 정부발주 공사 수주에 상당히 힘이 됐습니다.

건설교통부 실력자였으니 어련하겠습니까. " W사 수주담당 직원의 말이다.

이 회사는 지난해 지방국토관리청 과장 출신 S씨를 영입, 무려 4건의 국토관리청 공사를 수주했다.

한 관계자는 "IMF사태로 전체 물량이 30% 가량 줄어든 지난해에도 그 덕에 경쟁사들의 두배 이상 실적을 올렸다" 고 말했다.

지난해 6월 역시 국토관리청 과장 출신을 부사장으로 뽑은 또다른 W사. 이 업체는 잇따라 2건의 지방도로 건설설계 용역을 따내 지방 신설회사임에도 단숨에 업계 랭킹 15위권에 진입했다.

S사도 건설교통부와 도로공사 고위직을 지낸 P씨를 지난 여름 스카우트한 뒤 곧바로 서울 근교의 도로확장 설계용역 등 3건의 공사를 따냈다.

이밖에 건교부 고위직 출신을 영입한 K엔지니어링.P엔지니어링 등도 4~5건씩 따내 업계의 부러움 섞인 질시를 받고 있다.

반면에 힘있는 링커가 없어 곤두박질친 곳도 숱하다.

국가정보원.검찰청 (대검.서울고검.지검) 과 청와대 대통령 사저 등 주요 시설물을 설계하며 기술력을 인정받아온 S사. 도급순위 15위권으로 탄탄했던 이 회사가 지난해엔 한건의 국토관리청 공사도 따내지 못해 25위권 밖으로 밀려났다.

97년 4백억원을 넘던 매출액이 98년에는 2백80억원 수준으로 떨어졌다.

이밖에 소위 빅5중 하나인 D사와 도로부문 10위권 이내의 J사도 지난해엔 한건도 수주하지 못하는 이변이 일어났다.

지난해 상반기에 눈독 들였던 지방도로 감리용역 수주에 실패하는 등 고전한 M사의 수주담당 직원은 "전관영입 여하에 따라 업계순위가 뒤바뀌고 있다.

전체 공사물량의 80%가 정부발주 공사임을 감안하면 전관들의 영향력은 절대적" 이라고 했다.

이에 대해 건교부 모 간부는 "팔은 안으로 굽는다.

우리 식구를 끼지 않으면 수주가 쉽지 않다.

같은 값이면 식구들이 간 회사가 수주하는 게 좋지 않겠는가" 라며 우회적으로 시인했다.

특히 업계에서는 과거 수주실적이 미미했다가 최근 전관들을 영입해 급성장한 H사를 비롯, P.S.D.B.C사 등을 성토한다.

전관이 없는 경우 뇌물로 승부를 걸 수밖에 없다는 게 업계의 하소연. S사 L사장은 "계장.과장.국장 등 단계별로 봉투를 갖다줘야 한다.

최소 몇백만원씩은 기본이고, 덩치가 큰 공사는 동그라미 하나를 더 붙여야 한다" 고 털어놓았다.

그는 "자본이나 실적면에서 경쟁이 안되는 작은 회사들은 접대용 골프회원권 4~5장 정도를 의무적으로 가져야 한다" 고 씁쓸해 했다.

국회 건교위 송현섭 (宋鉉燮.국민회의) 의원은 "건설의 첫 단추인 입찰과정이 잘못되면 결과는 당연히 부실시공이나 고가 (高價) 낙찰 등으로 나타나고 결국 국민이 피해를 본다" 며 "제도보완이 시급하다" 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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