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 제왕절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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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 가운데 하나인 '맥베스' 에서 스코틀랜드의 장군인 주인공 맥베스는 마녀들의 예언만 믿고 온갖 악행을 일삼는다.

왕을 죽이고 왕좌에 오른 다음에도 사람 죽이기를 밥 먹듯 한다.

마녀들은 여전히 "여자의 자궁에서 태어난 자는 맥베스를 쓰러뜨릴 수 없다" 는 말로 그의 자만심을 부추긴다.

맥더프가 저항세력을 이끌고 쳐들어 왔을 때도 맥베스는 마녀들의 그 예언을 내세워 큰소리만 친다.

이때 맥더프는 이렇게 응수한다.

"나 맥더프는 달도 차기 전에 어머니의 배를 가르고 태어났다. " 맥더프가태어난 방식이 바로 '제왕절개' 다.

정확한 연대는 알려지지 않고 있지만 프랑스의 외과의사 길베뮈가 생체에 제왕절개를 처음 실시한 것이 16세기 후반이었고, '맥베스' 가 초연 (初演) 된 것이 1606년이었으니 셰익스피어가 길베뮈의 제왕절개 방식에서 힌트를 얻어 이 대목을 삽입한 것은 아닌지 추측되기도 한다.

제왕절개술은 1610년 독일의 외과의사 트라우트만이 실행하면서 대중화의 기틀을 다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고대 이집트에서 임신부가 죽게 됐을 때 배를 가르고 태아를 꺼집어 낸 다음 임신부를 매장했다는 기록이 있고 보면 제왕절개의 역사는 수천년에 이를 것으로 짐작된다.

제왕절개를 뜻하는 독일어 '카이저슈니트' 가 복벽절개로 출생한 기원전 로마의 율리우스 카이사르로부터 유래됐다는 사실만으로도 그렇다.

그 역사야 어떻든 현대사회의 제왕절개술은 임신부와 태아의 생명을 구하는데 적잖이 공헌해 왔다.

바꿔 말하면 제왕절개는 모체의 자궁이나 질이 기형이라든가, 임신부나 태아 중 어느 한쪽이 심각한 위험에 빠져 신속한 분만이 요구될 때 최후의 수단으로 사용돼 온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에 이르러서는 질의 원형을 그대로 유지하고 싶다든가, 혹은 원하는 날짜에 분만하고 싶다는 등의 이유로 제왕절개를 원하는 임산부들이 갈수록 늘고 있다.

국민의료보험관리공단에 따르면 지난해 상반기 제왕절개 분만율은 세계 최고수준인 36%를 나타냈다고 한다 (본지 3월 12일자) .

입원기간이 정상분만보다 약 2.6배나 길고, 진료비도 2.7배나 비싸다는 사실은 그렇다 치더라도 제왕절개 분만의 산모 사망률이 정상분만의 경우보다 4배나 높다는 사실은 전혀 염두에 두지 않는 것일까. 이 경우에도 '세계 최고' 를 자랑스러워해야 할는지 얼핏 혼란스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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