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위험수위 넘은 군기밀 유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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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영관급 장교들이 금품에 눈이 어두워 국가안보에 결정적 영향을 줄 수도 있는 군사기밀을 빼돌려 충격을 주고 있다.

군사기밀 유출 사건은 지난 3년간 해마다 발생했는데도 기밀 관리의 허술함이나 직업군인들의 윤리의식 실종 등 문제점이 전혀 고쳐지지 않고 있으니 큰일이다.

이번에 적발된 사건의 경우 도대체 우리나라에 군사기밀 유출방지를 위한 제도적 장치가 작동하고 있는지 의심스러울 지경이다.

주범격인 무기중개업체 사장은 예비역 중령이지만 현역 재직시 이미 고향친구와 무기중개상을 설립해 군납을 시도하다 적발돼 강제전출된 전력이 있으니 관계기관에서는 당연히 '감시 대상' 으로 삼았어야 옳았다.

이처럼 결정적 흠집이 있는 사람을 아무 처벌도 하지 않고 여전히 군수사령부에서 군사기밀 취급 업무를 맡도록 단순 전출시킨 것은 기밀 유출행위를 방조한 것이나 다름없다.

더욱이 그는 전역 한달 전부터 무기중개업체를 설립하고 국방부 조달본부에 등록했었다니 현역 신분으로 무기장사를 한 셈이 아닌가.

조달본부의 보안심사가 얼마나 허술한지, 또 군 정보.수사기관은 무얼 했는지 따져봐야 할 대목이다.

또 고급 장교들의 기강 해이도 큰 문제다.

영관급 장교는 그야말로 군의 기둥이 아닌가.

초급장교와 사병 등 부하를 통솔해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최고 지휘관을 보좌해 작전.기획 등 주요 군사정책을 입안하는 핵심 참모역할도 모두 그들 몫이다.

조국을 지키는 것을 평생 직업으로 삼겠다고 나선 장교들이 금전에 유혹돼 명예와 긍지를 팽개쳐버리고 군사기밀을 빼돌린다는 것은 다른 어떤 비리보다도 비난받아 마땅하다.

특히 남북대치 상태에서 군사기밀을 외국에 팔아넘긴 것은 도저히 용납받을 수 없는 배신행위다.

영관급 장교의 부패는 국가안보와 직결된다는 점에서 가볍게 보아 넘길 일이 아니다.

이들이 수집한 군사기밀은 주로 국방부가 2002년까지 추진할 수백억~수천억원 규모의 대규모 방위력 개선사업으로 해외 무기상들이 눈독을 들이는 내용이어서 유출이 확인되면 사업의 전면 재조정이 불가피하다고 한다.

그렇다면 국방부는 이번 기회에 군사기밀의 범위를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

선진국처럼 가능한 한 무기 구매리스트를 사전에 공개하는 등 도입 무기를 둘러싼 기밀을 최소화하라는 의미다.

공직자윤리법에 현역 시절 군수.방위산업 분야에 근무한 사람은 전역 후 2년간 같은 분야의 취업을 제한하고 있지만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다.

현재 활동 중인 무기중개상들도 대부분 관련부서에서 근무했던 예비역 장교.장성으로 이뤄졌다는 것이다.

당국은 이번 사건을 교훈삼아 군사기밀 유출 감시체제의 확립, 군기확립 차원의 정신교육 강화, 취업제한, 무기 구매 체제의 개혁 대책 등을 서둘러 마련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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