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전문가 여론조사 분석 대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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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중앙일보 통일문화연구소와 미국의 랜드연구소는 공동 여론조사의 결과를 심층분석하는 한.미 전문가 대담을 가졌다.

국방대학원 한용섭 (韓庸燮) 교수와 랜드연구소 노먼 레빈 선임연구원은 주변국과 안보.통일문제에 대한 한국인들의 인식이 96년 조사때에 비해 훨씬 더 논리적이고 현실적으로 바뀌었다는 점에 의견을 같이 했다.

▶韓 = 한국인들은 환란을 겪으면서 수세적이기보다는 오히려 적극적.낙관적으로 위기를 벗어나고자 하는 태도를 보였다.

주변국에 대한 태도가 96년 조사 때보다 훨씬 개방적이었으며, 특히 일본에 대한 한국인의 태도가 긍정적으로 바뀐 것은 주목할 만하다.

▶레빈 = 일본인들이 한국인을 존경할 것이라는 응답이 4배 이상 늘어난 반면 일본이 한국의 경제적.군사적 경쟁자라는 인식도 줄어들었다.

일본의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 진출에 대한 지지도 대폭 높아졌다.

북한이 남침할 경우 일본으로부터 전투적.금전적 지원을 포함한 모든 지원을 받아야 한다는 응답자도 늘어났다.

▶韓 = 이런 변화는 일본의 한국정부에 대한 문서상의 사과, 한.일 양국의 관계개선 및 화해, 북한문제에 대한 한.일간의 공동보조, 한국인의 자신감 회복 등 복합적 요인으로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한.미 안보동맹이나 미국에 대한 한국인들의 시각도 상당히 논리적이며 현실적인 것으로 나타났다.

▶레빈 = 한국인들은 국익의 관점에서 미국을 평가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한국은 앞으로 미국.유럽.아시아중 어느 쪽과 유대를 강화할 것이냐는 질문에 대해 미국이라고 응답한 사람이 96년 조사 때보다 늘어난 반면 아시아는 줄어들었다.

한국인들은 순수한 '아시아적 안보 선택' 보다는 국익 차원에서 미국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동시에 한국인들은 '미국이 모든 것은 아니다' 는 인식도 함께 갖고 있다.

▶韓 = 한.미 안보동맹의 필요성에 대한 한국인의 인식도 이를 보여준다.

96년 여론조사에서는 동아시아 안정이 1위로 꼽혔으나 이번에는 한반도 위기 억제가 1위를 차지했다.

한.미동맹의 역할을 한반도 문제에 상대적으로 국한시켜 이해하려는 현실인식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한.미동맹을 지역동맹으로 확장시키고자 하는 미국의 미래정책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매우 흥미있는 여론의 변화라고 본다.

▶레빈 = 한국인들은 한.미 안보동맹의 역할에 대해 미국의 '선택적 역할' 을 상정하고 있다.

또 96년보다 줄어들긴 했지만 한.미 안보동맹의 역할이 일본의 군사대국화를 방지한다는 점을 들어 여전히 이를 중시하고 있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韓 = 중국에 대한 한국인의 인식도 바뀌고 있다.

한.미 안보동맹이 중국의 군사력 확대에 대한 억지력으로 작용한다는 응답이 96년보다 크게 늘어났다.

▶레빈 = 한국인들은 통일 이후 중국과 일본 모두 한국에 위협이 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지만 중국쪽에 보다 융통성을 보여주고 있다.

여기에는 중국과의 문화적 동질성과 함께 상대국을 소외시키지 않으면서 외교목표를 달성하는 중국의 세련된 외교스타일도 한몫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韓 = 통일에 대한 태도는 더욱 신중해졌다.

이같은 현실적인 인식은 경제위기를 경험한데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이와 함께 통일후의 북한 주민에 대한 관대한 태도가 전반적으로 확산되고 있다는 사실도 특기할 만하다.

▶레빈 = 통일비용에 대한 조사에서도 세금이 부과된다면 낼 용의가 있다는 응답이 96년보다 높아졌다.

경제위기를 겪고 있는 한국인들이 이처럼 사려깊고 융통성있는 현실주의를 보여주고 있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韓 = 응답자 대부분이 어떤 경우든 핵무기를 가져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96년보다는 상대적으로 그 열망이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이번 조사에서는 '북한이 핵무기를 보유했을 때' 보다 '한.미동맹이 와해될 때' 핵무기를 더 필요로 한다는 인식을 보였다.

이는 미국의 핵우산과 안보보장이 더욱 중요하다는 점을 한국인들이 인식하고 있는 결과라고 할 수 있다.

북한이 설사 핵을 보유한다고 하더라도 한.미동맹이 있으면 북핵을 억지할 수 있다는 논리적인 생각이다.

▶레빈 = 핵보유 열망이 떨어지긴 했지만 아직까지 핵무기에 대한 한국인의 거부감이 거의 없다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응답자중 15%만이 어떠한 경우에도 핵무기를 가지지 않아야 한다고 응답했다.

이는 여전히 한국인들이 안보에 관한한 핵무기가 중요하다고 인식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韓 = 아시아 주둔 미군을 줄이거나 철수시켜야 한다는 주장이 96년보다 늘어났다.

이는 미국의 정책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조사 결과가 아닌가.

▶레빈 = 이 질문은 미군 감축 혹은 철수 시점이 통일 이후인지, 아니면 그 전인지 명확하지 않다.

다만 응답자들은 통일 이후 환경이 지금보다 훨씬 더 독립적이라는 점을 상정했으며 이런 맥락에서 미군주둔이 필요하지 않을 것임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이는 상당수 한국인들이 국제분쟁이나 평화유지활동 (PKO)에서의 한국 역할 강화를 지지하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

▶韓 = 1차 조사 때는 모호하고 이중적인 입장이 많이 표출됐다.

그러나 이번 조사를 통해 우리는 한국인들의 입장이 매우 명확하며 상당한 정도로 신뢰할 수 있는 결과를 얻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레빈 = 이는 무엇보다도 위기를 타개해 나가는 한국인들의 자신감을 반영하는 대목이다.

이번과 같은 여론조사는 향후 한.미 안보관계 발전에 중대한 시사점을 준다고 생각한다.

김성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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