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 뉴스] '유전자 정보은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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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너는 내가 지난 여름에
한 일을 알고 있다?

필시 그 때문일 터이다.
범죄자 '유전자 은행'이
생길 거라는 소식에
내가 이토록
켕기는 까닭은.

지은 죄가 좀 많은가?
고성방가, 노상방뇨
불법 횡단쯤 예사고,
성희롱 정도는 다반사.

남의 가슴에 수시로
말의 못 꽝꽝 박고.
온당치 못한 일 만나도
내 일 아니면 입 다물고….

온갖 방조죄가 있으니
도둑질 안 했다고,
살인하지 않았다고
자신할 수 없거니와,
들키지 않는 한
반성할 줄 모르는
죄도 추가.

나의 그런 범죄들이
일일이, 빠짐없이 기록돼
은행에 쌓인다면?

다행인 건 내가 지은
죄들이 아직 문서화하지
않았음이다.

더욱 다행인 건
동네가 떠들썩하게
경적 울리며 출동하는
어설픈 경찰들이 아직도
우리나라에 있음이다.

사실 그래서 겁나긴 한다.
유전자 은행이든
범죄자 파일 등록이든
한번 만들어진 다음엔
아무 데나 거는
갈고리로 쓰일 것 같아서.

상식이라 알고 있던
일들이 워낙 헷갈리는
요즈음이라서.

*검찰이 연쇄살인사건을 계기로 범죄자의 유전자를 모아놓은 이른바 '유전자 정보은행' 설립을 본격적으로 추진한다.

송은일<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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