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회 삼성화재배 월드바둑마스터스] 놀란 토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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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면

<예선 결승> ○·후야오위 8단 ●·김지석 5단

제9보(108-121)=좌하귀 패가 현안이어서 두 기사는 여기에 몰두하고 있다. 그러나 백은 111 쪽의 거의 무한대에 가까운 패감을 당해내지 못한다고 보고 114로 이어 좌상귀를 살리고 패는 양보하게 된다. 115로 빵 따낸 이상 116은 반드시 필요한 수비. 손을 빼 흑이 116 자리에 빠지면 A와 B가 맞보기여서 파탄을 맞게 된다.

그렇더라도 대세는 백이 좋다. 우상을 잡은 백의 실리가 어마어마해서 후야오위는 배부른 자세로 느긋하게 판을 바라보고 있다. 하지만 이때 김지석의 117, 119가 미묘한 파장을 일으키며 판 위에 등장했다. 117은 죽은 돌을 키웠으니 명백한 손해수. 그러나 이 수에 후야오위는 허를 찔린 듯 놀란 토끼가 되고 만다.

손 빼고 ‘참고도’ 백1에 지킬 수 있을까. 그럴 수만 있다면 이 바둑은 백의 필승이다. 하지만 흑2로 막아오면 상변 백과 수상전이 벌어질 가능성이 농후해진다. C가 선수여서 흑의 수는 끝도 없다. 후야오위는 다시 한 번 계가를 해 보고 120에 받고 만다. 전보에 백△로 빠지지 않고 그냥 이곳을 젖혀 이었더라면 가일수는 필요 없었다. 그게 마냥 후회스럽지만 다행히 아직은 형세가 괜찮다는 게 위안이다.

하지만 추격의 불을 댕긴 김지석의 기세는 점점 더 매서워지고 있다. 121의 코 붙임도 뒷골이 쩌렁 울리는 급소의 일격.

박치문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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