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늑대의 죽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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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7면

어니스트 톰슨 시튼이 쓴 『동물기』에는 늑대가 여러 차례 등장한다. 그중에 ‘배들랜드 빌리’란 검은 목털을 가진 늑대는 몸무게가 63㎏이나 나가고 발자국 길이가 14㎝나 됐다. 그 덕분에 사냥꾼의 추적을 따돌리고 여유 있게 가축을 잡아먹곤 했다. 한번은 끈질긴 사냥개 무리에게 쫓기게 됐으나, 절벽 위로 난 좁은 길로 그들을 유인해 15마리 모두를 하나씩 벼랑 아래로 떨어뜨리고는 유유히 사라졌다.

올 2월 미국 스탠퍼드대학 연구팀은 빌리처럼 북미 대륙에 있는 늑대의 검은 털은 개 유전자가 섞인 결과라는 논문을 사이언스지에 발표했다. 사람들이 개의 품종을 개량해 검은 털을 갖도록 했고, 검은 털을 만드는 유전자가 1만5000년 전에 거꾸로 개의 조상인 야생 늑대로 흘러 들어갔다는 것이다. 이는 늑대와 개, 사람이 멀지 않은 사이임을 말해준다.

늑대가 사람을 공격하는 일은 드문 일이다. 개-늑대 잡종이거나 사육 늑대의 경우 어린이를 공격할 때도 있지만, 야생 늑대는 오히려 사람을 두려워한다. 『동물기』에 등장하는 노련한 늑대 사냥꾼 킹 라이더조차 “지금까지 늑대가 사람을 공격하는 것을 본 적은 한 번도 없다”고 말한다. 드물지만 미국·러시아에는 도시를 배회하며 인간과 공존하는 늑대가 있다고 한다.

하지만 사람들은 늑대가 가축에 막대한 피해를 끼친다며 늑대 사냥을 정당화한다. 캐나다 작가 팔리 모왓은 『울지 않는 늑대』란 책에서 “북극의 순록이 줄어든 것은 모피 상인들이 매년 수천 마리씩 남획한 탓인데도, 늑대에게 누명을 씌운다”고 고발한다.

80만 년 전 등장한 늑대는 유럽·아시아·북미 지역에 넓게 분포했으나 이제는 서식지 파괴와 사냥으로 전 세계에 10만 마리뿐이다. 남한에서는 1967년 경북 영주에서 잡힌 게 마지막 야생 늑대다. 이젠 동물원에서나 볼 수 있을 뿐이다.

지난달 26일 동물원의 암컷 늑대 두 마리가 죽었다. 경기도 포천에서는 ‘아리’가 탈출했다 사살됐고, 서울동물원에서는 ‘스널프’가 세균 감염으로 죽은 채 발견됐다. 아리는 99년 중국 하얼빈동물원에서 얻어왔고, 스널프는 2005년 서울대가 세계 최초로 복제한 것이다.

초원을 달려야 할 늑대가 좁은 우리에 갇혀 쳇바퀴 돌듯 맴도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허망하게 죽지 않고 제 수명대로 살도록 해주는 게 그나마 우리 사람이 지켜야 할 마지막 도리가 아닐까.

강찬수 환경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