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관료화 안될 농.축협으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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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정부가 농.축.임.인삼협 등을 2001년까지 완전히 통합하는 것을 골자로 한 협동조합 개혁안을 내놓음으로써 생산자단체의 개혁이 본격적으로 수술대에 올랐다.

그동안 공기업개혁 못지 않게 농.수산업 관련 생산자단체의 구조조정이 지지부진해 당사자인 농어민은 물론 국민의 불만대상이 돼 왔다.

역대정부가 협동조합의 문제를 몰랐던 게 아니다.

문제와 해결의 큰 방향은 알면서도 주춤거려 온 것이 결국 최근 감사원의 농.축협비리 감사결과로 다시 불거졌고 이번 개혁안도 이미 정부가 지난해 4월 협동조합 개혁위원회를 통해 다듬어온 안을 재손질해 내놓은 것이다.

그러나 개혁방안의 방향이 옳더라도 추진과정에서 굴곡되는 경우가 많다는 데서 유의할 점이 적지 않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번 통폐합을 통해 단위조합들은 농민들의 수요에 전적으로 부응하는 조직으로 거듭나야 한다는 것이다.

난립한 일선 조합의 전문성과 취약성으로 규모의 경제를 이루지 못해 왔으며 때문에 조합원이 요구하는 전문적 서비스를 제공하지 못해 왔다.

그 결과 부실조합은 양산되고 한편으로는 귀족농가만 살찌우는 조직이 돼 왔던 것이다.

중앙조직도 투명경영을 통해 도시 속의 농업 화이트칼라라는 불명예를 씻고 이번에야말로 신용사업이 경제사업을 뒷받침하기 위해 존재한다는 사실을 새길 필요가 있다.

중앙회장과 단위조합장 선출을 간선제로 전환키로 했지만 현 직선제가 농민들의 절대적 지지를 받았던 이유를 잘 파악해 미비점을 보완해야 할 것이다.

차제에 수협도 단위조합을 통폐합하고 중앙회는 다른 협동조합과 하나로 합치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

이미 어민들은 일본의 배타적 경제수역 (EEZ) 의 어획축소로 터전이 줄어가는데 조합만이 난립할 근거는 적으며 주관부처가 농림부와 해양수산부로 갈려 논의가 어렵다지만 그것은 정부내에서나 할 얘기다.

주의할 것은 이번 개혁이 농민과 협동조합의 자율을 저해해서는 안된다는 점이다.

이번 개혁안은 정부의 일방통행적 성격이 강한데다 그렇지 않아도 협동조합은 수조원에 달하는 정책사업 대행으로 농림부에의 의존도가 엄청나다.

결국 이것은 농림부의 입김 강화로 연결돼 협동조합의 관료화가 다시 정부의 관료화로 대체될 우려를 갖게 한다.

내년 총선거를 앞두고 이번 개혁이 다시 실종되지 않을까 하는 현실적 우려도 크다.

지역구 정치인은 선거 때만 되면 서로 농협조직 장악을 위해 뛰어 온 게 사실이며 한쪽에서는 벌써부터 이번 개혁안을 협동조합 길들이기로 보는 시각도 나타나고 있다 한다.

결국 정부가 정도 (正道) 를 지켜 투명한 개혁을 추진하는 외에는 달리 방법이 없다.

김성훈 (金成勳) 농림부장관은 개혁추진의 다짐을 위해 농림부 고급관리 4명과 함께 사표를 써 맡겼다 한다.

앞으로의 추진과정을 주시코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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