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 검열 최대 희생양은 음악-英誌 '검열목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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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3면

예술 장르 중 검열대상 제1호는? 문학.연극.미술.영화 중 하나일 것으로 생각하겠지만 그렇지 않다. 정답은 음악.

'음악이란 그 자체 외에는 아무 것도 의미하지 않는다' 는 작곡가의 스트라빈스키의 말마따나 가장 순수하고 추상적인 예술로 여겨온 터라 더욱 믿기지 않는 일이지만 영국서 발행되는 격월간지 '검열 목록' 최근호가 밝혀낸 엄연한 사실이다.

'퇴폐적' 이라는 이유로 나치가 금지했던 재즈나, 섹스.폭력.약물중독.반체제의 메시지를 담았다는 이유로 검열의 대상이 됐던 50년대 이후의 록음악 뿐만 아니라 '점잖은' 클래식 음악도 그렇다니 고개가 갸우뚱해진다.

권력에 위협적이거나 순진한 사람을 파멸로 이끄는 파괴력이 있기 때문일까. 아니면 검열의 기준이 애매해서 마구잡이로 칼날을 휘두른 것일까. 다른 예술과는 달리 음악에 대한 검열에 대한 관심은 그리 크지 않다.

지난해 말 코펜하겐에서 세계 최초로 '음악과 검열' 이라는 주제의 학술대회가 열린게 전부. 클래식 음악에서 음악검열의 역사는 플라톤이 '국가론' 에서 국가의 존립에 치명적인 위협을 가한다는 이유로 특정의 음정.음계를 금지한 것에서 시작된다.

하지만 최근의 예도 한둘이 아니다. 89년 브리튼의 오페라 '베니스에서 죽다' 는 청소년 대상으로 열린 글라인데본 오페라페스티벌에서 학교 내 동성애 찬양 금지법에 따라 공연이 취소됐다.

걸프전쟁이 한창일 때 영국 BBC는 반전 (反戰) 음악의 방송을 일체 금지했다. 적성 (敵性) 국가의 작품도 마찬가지. 1차대전 당시 영국에서는 독일 음악이, 독일에서는 영국.프랑스 음악이 금지됐다.

소련 당국은 나치의 유태인 학살의 만행을 고발한 쇼스타코비치의 교향곡 제13번 '바비 야르' 에서 유태인 이외의 민족들도 희생됐다는 내용의 가사를 삭제하라고 요구했다.

중국 문화혁명 기간에는 일체의 서양음악의 연주가 금지됐다. 피아니스트들은 건반이 그려진 종이로 연습해야 했다.

역사상 가장 악랄한 음악 검열은 나치 독일에서 전개됐다. 유태인 작곡가들은 망명을 가거나 총살 당했으며 음악은 연주금지를 당했다. 그 여파로 이들 음악은 지금까지도 널리 연주되지 않는다.

유태인 음악가들을 가리켜 흉내만 낼 뿐 창조력이 부족하다고 비난했던 반유태주의자 바그너는 히틀러의 총애를 받은 덕분에 45년 이후부터 지금까지 이스라엘에서 단 한번도 연주된 적이 없다.

81년 텔아비브에서 지휘자 주빈 메타가 앙코르곡으로 '트리스탄과 이졸데 전주곡' 을 시작하자 청중들이 윗옷을 걷고 나치의 만행으로 입은 상처를 들춰 보이면서 격렬히 항의했다.

이장직 음악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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