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박물관 1호 보물 (25) 카메라박물관 ‘콘탁스 II 라이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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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6면

독일, 1936년, C.Z. Jena Olympia Sonnar f2.8/180mm렌즈, 1/2초~1/1250초 금속 포컬플레인셔터.

손기정(1912~2002) 선수가 일장기를 달고 마라톤 금메달을 딴 1936년 제11회 독일 베를린올림픽. 히틀러 정부는 당시 올림픽용 카메라 4대를 특수 제작했습니다. 당시 세계에서 가장 큰 카메라 제조사 차이스 이콘(Zeiss Ikon)사에서 생산한 ‘콘탁스 II 라이플(Contax II Rifle)’입니다. ‘소총(rifle)’이란 이름처럼 총대에 카메라의 몸체와 망원 렌즈, 반사 미러 박스가 연결된 모양입니다. 총칼로 식민지를 다스렸던 제국주의 국가의 이미지와 절묘하게 맞아떨어지지요.

이 카메라는 움직임이 많은 선수들의 순간을 포착하기에 적합했습니다. 총대를 어깨에 밀착하고 뷰 파인더로 들여다보며 화각을 결정한 뒤, 방아쇠를 당기면 릴리즈 선으로 연결된 셔터가 작동하도록 설계되었습니다. 총대 모양의 어깨 장치는 망원렌즈 특유의 손떨림을 방지하는 효과가 있었습니다. 손기정 선수가 결승 테이프를 끊던 순간 또한 이 카메라가 담았으리라 추정됩니다.

당시 제작된 4대 중 1대는 훼손됐고, 2대는 행방을 알 수 없습니다. 세계에서 유일하게 한국카메라박물관에서만 볼 수 있습니다. 한국의 박물관에 이 카메라가 오게 된 것은, 우승을 하고도 한없이 슬픈 표정을 지었던 나라 잃은 한 청년을 기억하라는 뜻이 아닐까요.

이경희 기자

◆한국카메라박물관(www.kcpm.or.kr)=카메라 3000여 점과 각종 렌즈, 유리원판 필름, 사진 인화기 등 1만5000여 점을 소장한 세계적인 수준의 카메라 박물관. 과천시 막계동. 4호선 대공원역 4번출구 뒤편에 있다. 김종세 관장 인터뷰는 6일자 중앙SUNDAY에 실린다. 02-502-4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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